모자 위의 꽃/김영찬 모자 위의 꽃 김영찬 ​ 모자가 씌워졌다 억지로 나는 갑자기 코웃음이 솟아올라 머리 쥐어뜯고 어깨 들썩거렸다 어깨를 들썩거리니까 모자가 떨어져 나간다 모자가 떨어져 나가니까 솟아오르던 눈웃음이 푹 꺼져서 모자가 찌그러지고 찌그러진 모자 위의 웃음소리가 물 없는 저수지.. 나의 시 2014.07.30
투투섬에 가보까마까 투투섬에 가보까마까 김영찬 미국 부엉이는 투휫투후 tuwhitt~ tuwhoo 투~휫~투~후 운다 영어를 몰라서 한국의 부엉이는 부엉부엉 제 이름밖에 아는 게 도통 없어서 부엉 부부엉~ 엉엉 울 때 있다 Tuwhitt Tuwhoo 아울Owl씨, 나랑 한국말 좀 배울까요? 토종 부엉이가 미국말 배운다고 빠다 핥는 소릴.. 나의 시 2014.06.07
능소화 능소화 김영찬 그러니 깐 두루, 능氏 성에 소화 — 消火인지, 放火인지 뱃속 부글부글 소화도 못 시킬 그 지지배 얘기는 깨끗이 접자고요 요상하고 요염(妖艶)하기로는, 마릴린 먼로 뺨치게 아랫도리 욱신욱신 고개 꺾으면, 계집종 같은 꽃 그 풍신에 어물어물 배꼽 아래 밋밋한 아랫입.. 나의 시 2013.10.20
불멸을 꽃 피운 시, 나의 시인에게 불멸을 꽃 피운 시, 나의 시인에게 김영찬 시는 유리창 박살내는 광풍(狂風)일 수 있으되 고요히 눈 깜빡이는 가로등이어야 하고 시는 심해를 물결치는 물고기의 발광체(發光體) 은비늘일 수 있으되 등줄기에 물을 뿜는 고래의 심호흡(深呼吸)이어야 하고 시는 짙푸른 녹음에 놀라 질겁하.. 나의 시 2013.03.07
눈 나리는 나라의 레오 눈 나리는 나라의 레오 눈 나리는 나라의 레오 김영찬 레오를 생각하면 맑은 날씨에도 펑펑 눈이 내린다 레오는 부자였다 앞이 트인 저택 말고도 사륜마차가 세 대 농노와 하인들을 부려 경작하는 장원은 넓고 연중 작황이 좋았다 까다로운 성품 못지않게 젊고 귀티 나는 그의 아내는 욕.. 나의 시 2013.01.31
해변의 정사; 이 혹한에 문득 간절해지는 바닷가의 낭만, 꿈꾸는 몽금포 해변의 정사 김영찬 꿈꾸는 몽금포, 몽금포 모래언덕으로 차를 몰았네 도주하듯 애인과 함께 뚜껑 없는 신형 스포츠카를 타고 꿈꾸는 모래성, 부드러운 석양은 우리를 감시하듯 내내 뒤쫓아 왔네 저녁은 어둠을 한 트럭 싣고 와서 어수룩한 연인들의 속눈썹에 흐린 눈의 안개로 암막을 .. 나의 시 2013.01.26
동향인 티나나를 찾습니다 동향인 티나나를 찾습니다 김영찬 아무래도 나는 나 고향사람 같지는 않아 읽지 않을 예언을 팍 구겨 쥐는 쓸데없는 근육 외지인의 속독법이란 이런 것 같아 그는/나는 동쪽에서만 나타나지 향일성인 우리는 재빨리 북쪽에 등을 돌리지 광고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동쪽을 끼고 아랫입.. 나의 시 2012.11.21
당나귀와 애인 당나귀와 애인 김영찬 나는 네가 당나귀일 때가 좋아 참 좋아 당나귀는 말이 없지 말총꼬리 흔들어 날파리를 쫓는다 하지만 악다구니들은 달아나는 척 멀리 물러났다가 화롯가에 모여들듯 눈곱 낀 당나귀 눈자위에 빙 둘러앉지 눈가의 깊은 주름 호수에 발을 담근 채 날파리들은 가난한 .. 나의 시 2012.11.16
소말리아의 처녀/김영찬 소말리아의 처녀 김영찬 내가 처녀로 태어나면 소말리아 해적의 애인이 될 거야 탱글탱글 부풀어 오른 가슴 실팍한 엉덩이를 뒤뚱뒤뚱 흔들며 해적선 갑판에 올라 안녕, 소말리아의 밤이여 물 먹은 별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손 흔들어 잘 있으라고 고별의 눈물 한 방울 남기지.. 나의 시 2012.03.31
늑대별이 웃다 늑대별이 웃다 김영찬 휴지 한 장만으로도 치부를 충분히 가릴 수 있다 마른 휴지 두 장이면 부끄러운 곳 전부 또는, 감추고 싶은 곳만 숨길 수가 있다 마술의 물수제비 물에 젖지 않는 휴지 한 토막 그러나 나는 한때 바람의 친구였지 늑대별 건너편 세상에는 무슨 수수께끼가 작패 없는 .. 나의 시 2012.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