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모자 위의 꽃/김영찬

바냔나무 2014. 7. 30. 12:46

 

 

모자 위의 꽃  

 

                                             김영찬

 

 

모자가 씌워졌다 억지로

나는 갑자기 코웃음이 솟아올라 머리 쥐어뜯고

어깨 들썩거렸다 

어깨를 들썩거리니까 모자가 떨어져 나간다

모자가 떨어져 나가니까

솟아오르던 눈웃음이 푹 꺼져서

모자가 찌그러지고

찌그러진 모자 위의 웃음소리가

물 없는 저수지 바닥에 앙금으로 가라앉는다

 

너희들은 왜 이렇게 모자만 보면 모자는 쓰지도 않고

법석을 피우니?

모자만 보면

모자를 모자 위에 눌러쓰는 모욕적인

불쾌감으로

모가지 움츠리는 사람들

 

너희들은 아직도 모자 없는 세상을 상상하느라 이처럼

모자를 모르지?

건너편에서 불어온 돌개바람이 모자를 수거해간다

나는 모자 없는 모자를 이마 위에 삐딱하게 돌려쓰고

거리로 나선다

 

내 얼굴 위에 모자가 꽃피었다

 

‘모자가 떨어지면서 누구 것인지 모를 웃음이’* 쏟아져 나올 것이지만

내 얼굴 위에 꽃 핀 모자

얼굴 위에 모자가 꽃을 피웠다

 ​

*이정란의 시 ‘악보 없는 얼굴’에서

 

[출처] 모자 위의 꽃 / (김영찬. 2014년<다시올문학>봄호.)|작성자 고요한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