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해변의 정사; 이 혹한에 문득 간절해지는 바닷가의 낭만, 꿈꾸는 몽금포

바냔나무 2013. 1. 26. 12:53

 

 

해변의 정사


김영찬


꿈꾸는 몽금포, 몽금포 모래언덕으로 차를 몰았네
도주하듯 애인과 함께
뚜껑 없는 신형 스포츠카를 타고


꿈꾸는 모래성, 부드러운 석양은 우리를
감시하듯
내내 뒤쫓아 왔네


저녁은 어둠을 한 트럭 싣고 와서
어수룩한 연인들의 속눈썹에 흐린 눈의 안개로
암막을 쳤지
바닷가의 밤은 그러나 큰누나처럼 다정하다가도
민박집 아저씨의 침묵처럼 문득
낯설기도 한 것
일몰의 찰나에 잠깐
달콤한 혀를 노을의 뺨에 대고 싶었던 나는
밤바다의 백사장에 몸을 펼쳐
길게 눕고만 싶었네


꿈꾸는 몽금포, 몽금포 해수욕장 흰 모래언덕엘 갔네
그 나라에는
여행자를 친절히 안내하는 국경 초소가 있고
처음 온 내방객들에게 문 활짝 열어주는
수평선


멀리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집어등 들어올려
우릴 부를 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입맞춤
아찔한 키스로
밤을 지연시켰어야 옳았네
*‘오늘 밤 내게 단 한 번의 깊은 입맞춤을 주시겠어요?
그러면 내일 아침에 예쁜 아이를 낳아드릴께요.’


해변 모래성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깨지 않을 잠에서
영영 돌아오지 말았어야 옳았네
길고도 긴 키스 속으로 침몰, 물고기 밥이 되었어야
옳았네, 옳았었네


*최승자의 시, ‘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중에서

—계간 『현대시문학』200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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