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소말리아의 처녀/김영찬

바냔나무 2012. 3. 31. 15:56

 

 

 

 

소말리아의 처녀

  

                                 김영찬

 

 

 

 

내가 처녀로 태어나면 소말리아 해적의 애인이 될 거야

탱글탱글 부풀어 오른 가슴

실팍한 엉덩이를 뒤뚱뒤뚱 흔들며

해적선 갑판에 올라

안녕, 소말리아의 밤이여

물 먹은 별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손 흔들어 잘 있으라고

고별의 눈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떠날 거야 미련 없이 먼 바다로

  

소갈머리 없는 년, 어린 네가 뭘 그리 잘 난 척

함부로 무너질 듯

앞장서서 설치느냐고 국어선생님이 말려도 이미 늦었지

뭔 짓인들 이보다 못 할라고

어머니가 몰아쳐도 소용없어 운명은 아덴만을 건넜지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애 낳는 일 밖에 없다면

그렇다면 차라리 공해상으로 나아가

국적 없는 애를 실컷 쏟아내 해적들의 호적에

입적 시킬 거야

  

뭉텅뭉텅 갑상어 알보다 더 많은 사생아들이 퍼져서

인도양을 꽉 메우고

태평양 연안까지 진출하면

대서양을 장악하는 건 시간문제

아무도 소말리아 영해를 넘보고 군침 흘리는 짓 어림없지

 

내가 세상을 졸업하면

처녀의 몸으로 소말리아 해적선을 탈거야

 


*격월간 문예지 <유심> 2012년 3/4월호에 게재

   

 

소말리아는 자원빈국이다. 소말리아에 관심 둬서 선국이 얻어낼 거라곤 거의 없다.

가진 거라고는 황무지나 다를 바 없는 땅덩어리 뿐. 그나마 서방국가들이 마구잡이로 갖다버린 산업 쓰레기와 핵폐기물 때문에 불모의 땅이 된 실정이라고 한다.

청정하던 원시의 바다 역시 이름 모를 화공물질로 오염돼 소말리아 근해 바다에는 더 이상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농사를 지어먹던 부락민들은 시름시름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쓰러지고 아직 힘 꽤나 쓰는 청년들은 고기잡이를 위해 더 먼 바다로 점점 더 멀리 진출하다가 열약한 어업 장비로는 도저히 선진국 어선들의 싹쓸이 어획에 대적할 수가 없어 먹고 살길이 막막한 현실이다.  

이렇게 되자 젊은이들은 죽기 살기로 해적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어 해적선을 타게 된다. 이 얘기가 과장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해적들의 생존권을 살펴보아야 할 아량을 가져야한다. 이유 없이 장난삼아 해적의 길을 택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김영찬(시인)

[출처] 소말리아의 처녀 |작성자 banyan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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