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영찬이 <젊은시인들을 위해> 릴케를 데려왔습니다.

바냔나무 2011. 3. 31. 12:05

3월의 마지막 날 정오, 김영찬이 릴케를 데려왔습니다. <젊은시인들을 위해>




누구든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몰락해보지 않고는 시인이 될 수 없습니다.


릴케의 시는 사춘기의 휘파람처럼 고요히 우리들에게 잦아들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변하고 초원은 언제까지나 향기를 뿜어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사춘기 소년소녀가 아니듯이 세상은 바뀌고 의식은 복잡해졌습니다.

릴케의 시를 잘못 읽으면 감상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따라와야 합니다.

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지만,

우리가 애송하던 어떤 시들은

유아적 몽상의 늪에 우리를 빠뜨려

현실로 발 딛는데 장애요인으로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릴케를 잊고 지낸 많은 세월, 우리는 무슨 일로 번잡했으며

무엇이 되어 가슴에 잦아들던 그 옛날의 릴케를 다시금 가슴에 끌어안게 되는지요.


삼월이 저물어갑니다. 릴케의 계절이 서서히 우리 앞에 꽃등 켜고 다가옵니다.

김영찬




사랑의 노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당신의 영혼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내 영혼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하면 이 영혼이

당신을 넘어 다른 것들을 향해 솟아날 수 있나요?

아, 어둠 속 깊은 곳 어느 잃어버린 것들 곁에

나의 영혼을 숨겨두고 싶습니다.

당신의 깊은 곳이 흔들릴 때도 꼼짝 않는

낯설고 조용한 그곳에.

그러나 그대와 나, 그래 우리를 건드리는 모든 것은

두 현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운궁법처럼 우리를 합쳐줍니다.

어떤 악기 위에 우리는 팽팽히 드리워져 있나요?

어떤 바이올린 주자가 우리를 손에 넣을까요?

아 달콤한 노래여.


-신시집 Neue Gedichte에서



 

사랑에 빠진 여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것은 나의 창문, 나는 방금 살포시 잠에서 깨어났어요.

나는 두둥실 떠도는 듯 했어요.

나의 인생은 어디에까지 미치고, 밤은 어디서 시작되는지요?


나는 생각합니다. 주위의 모든 것이 아직 나 자신 같다고;

수정의 심연처럼 투명하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고 말이 없어요.


나는 내 가슴에 별들을 담을 수도 있어요; 내 가슴은

그렇게 크다고 생각되거든요 ;

내가 사랑하기 시작하여 붙잡아 둘지도 모를 그 사람을

나의 가슴은 기꺼이 놓아줍니다.

아무 것도 쓰여진 적이 없어 낯선 듯

나의 운명은 나를 바라봅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 끝없음 아래 놓여 있는 건가요,

초원처럼 향기를 풍기며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소리치며, 또 누군가 그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하는가요,

나는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서

몰락하도록 운명 지어졌습니다.


-신시집 제2권 Der Neuen Gedichte Anderer Teil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