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지막 날 정오, 김영찬이 릴케를 데려왔습니다. <젊은시인들을 위해> 누구든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몰락해보지 않고는 시인이 될 수 없습니다. 릴케의 시는 사춘기의 휘파람처럼 고요히 우리들에게 잦아들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변하고 초원은 언제까지나 향기를 뿜어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사춘기 소년소녀가 아니듯이 세상은 바뀌고 의식은 복잡해졌습니다. 릴케의 시를 잘못 읽으면 감상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따라와야 합니다. 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지만, 우리가 애송하던 어떤 시들은 유아적 몽상의 늪에 우리를 빠뜨려 현실로 발 딛는데 장애요인으로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릴케를 잊고 지낸 많은 세월, 우리는 무슨 일로 번잡했으며 무엇이 되어 가슴에 잦아들던 그 옛날의 릴케를 다시금 가슴에 끌어안게 되는지요. 삼월이 저물어갑니다. 릴케의 계절이 서서히 우리 앞에 꽃등 켜고 다가옵니다. 김영찬
사랑의 노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당신의 영혼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내 영혼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하면 이 영혼이 당신을 넘어 다른 것들을 향해 솟아날 수 있나요? 아, 어둠 속 깊은 곳 어느 잃어버린 것들 곁에 나의 영혼을 숨겨두고 싶습니다. 당신의 깊은 곳이 흔들릴 때도 꼼짝 않는 낯설고 조용한 그곳에. 그러나 그대와 나, 그래 우리를 건드리는 모든 것은 두 현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운궁법처럼 우리를 합쳐줍니다. 어떤 악기 위에 우리는 팽팽히 드리워져 있나요? 어떤 바이올린 주자가 우리를 손에 넣을까요? 아 달콤한 노래여. -신시집 Neue Gedichte에서
사랑에 빠진 여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것은 나의 창문, 나는 방금 살포시 잠에서 깨어났어요. 나는 두둥실 떠도는 듯 했어요. 나의 인생은 어디에까지 미치고, 밤은 어디서 시작되는지요? 나는 생각합니다. 주위의 모든 것이 아직 나 자신 같다고; 수정의 심연처럼 투명하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고 말이 없어요. 나는 내 가슴에 별들을 담을 수도 있어요; 내 가슴은 그렇게 크다고 생각되거든요 ; 내가 사랑하기 시작하여 붙잡아 둘지도 모를 그 사람을 나의 가슴은 기꺼이 놓아줍니다. 아무 것도 쓰여진 적이 없어 낯선 듯 나의 운명은 나를 바라봅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 끝없음 아래 놓여 있는 건가요, 초원처럼 향기를 풍기며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소리치며, 또 누군가 그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하는가요, 나는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서 몰락하도록 운명 지어졌습니다. -신시집 제2권 Der Neuen Gedichte Anderer Teil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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