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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 시인의 시집『투투섬에 안 간 이유』는 눈부신 상상력과 앙똥한 어조가 빚어내는 파노라마 같은 시의 원근을 느낄 수 있다. 막무가내인 둣하면서도 살갑게 눙치는 낯선 기법, 이름모를 시공으로부터 달려와서 들려주는 변화무쌍한 시적 담론이 참신하다.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2010년 12월21일 (화)
나 투투섬에 안 간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투투섬 망가로브 숲에 일렁이는 바람/거기서 후투티 어린 새의 울음소릴 못 들은 걸/후회하지 않아요/처녀애들은 해변에서 하이힐을 벗어던지겠죠/풀어젖힌다죠/수평선을 끌어당긴 비키니 수영복 끈은/자꾸만 풀어져/슴새들의 공짜 장난감이 된다는/투투섬에//나 그 섬으로 가는 티켓을 반환해버린 걸 결코/후회하지 않아요/쓰리당한 핸드백처럼 볼품없이 행인들 틈에 섞이다가/보도블록에 넘어진 사람 부축한 일 없지만/옛날 종로서적 해묵은 책먼지 생각이 떠올라서/풍선껌이나 사서 씹죠//ㅡ 나 투투섬에 안 간 것 정말 잘한 결정이죠/발자국 수북이 쌓인 안국역 지나 박인환을 꼭 만날/예정은 아니더라도/마음속에 마리서사* 헌책방이나 하나 차리고/멀뚱멀뚱 토요일의 난간에 기대어/낡디낡은 태엽에 감긴 시간을 풀어주기도 하며/후투티 둥지 안에 투숙할까/그런 계획이죠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다중적 이미지, 기표/기의의 결합을 와해시키는 섬광의 언어들
김영찬 시편의 진정한 의미는, 의미 너머 혹은 의미 이전의 세계에 대한 상상적 희원에 있다. 그는 의미 부여가 불필요한 “나뭇잎 살랑살랑語”나 “달맞이꽃 조용한 속눈썹웃음語”(「불립문자들」) 같은 것들을 시에 적극 끌어들이거나, “영혼의 칸막이마다 글자들의 침묵을 끌어”(「우로보로스Ouroboros로 가는 깊은 침묵」)들여 의미론적 과잉의 벽(癖/壁)을 반성적으로 해체한다. 이러한 반성적 해체론에는 “오독은 오독오독~ 사탕 깨물던 습관이 만든 의성어”(「의도적인 오역」) 등을 활용한 활달한 펀(pun)과 함께, “책갈피마다 지문 찍힌 행간이 좁은 골목길”(「《새로운 세상》의 책」)을 오래 돌아온 이가 엮어내는 폭 넓은 상호텍스트성이 독자적 내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안에 그는 역동적 몽유의 상상력과 음악적 자의식의 흔연한 결속, 다중적 이미지 다발이 풀어내는 아득한 에스프리, 기표와 기의의 착한 결합을 와해시키는 섬광의 언어들을 가득 풀어놓는다.
하지만 그러한 상상과 열망의 이면에는 쓸쓸하고 고독한 나그네로서의 실존적 표정이 어둑하게 깃들여 있다. “가난한 영혼은 어딜 가도 오아시스처럼 수줍고 외롭다”(「아부다비」)고 노래하는 그의 마음은, 그래서 언제든 “마음을 햇빛 바깥에 두고/머나먼 길 떠나게”(「관타나모에 내리는 비」) 될 것 같은 예감을 준다. 결국 김영찬은 고백과 증언이라는 근대 시학의 너머를 꿈꾸면서도, “실은 조금 외로울 뿐”(「던킨도넛*Dunkin Donut 속의 당나귀」)인 자신의 삶과 시간과 감각을 이렇게 수줍고도 외롭게 노래하는, 역설적 의미의 서정시인인지도 모른다.
□ 시인의 말
비둘기가 999 노래하는 것은…………
사랑 求求……
cu cu ru cu cu La paloma 입맞춤 九九
아홉 번 간지러우니까
鳩鳩 구구구…,
久久
시를 쓴다기보다 그냥 받아 적거나 흥얼흥얼 주억거릴 때
나흘 굶어 몸이 유체이탈, 부유할 것 같다.
모든 문맥/모든 사물에 의미의 거머리가 붙어 다니는 게 지겹다.
어떻게 國語生活을 떠나
아홉 번 무의미한 말로 너에게 닿을 길은 없을까.
나에게 9 더하기 1이 완성되는 날이 오기는 올 테지만 초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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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소개
김영찬 시인
충남 연기에서 출생. 한국외국어대학 프랑스어과 졸업. 고교시절 손호/김백겸/이면우 시인 등과 돌샘문학회 동인으로 문학에 입문, 대학시절 심호택/김정란/박경원 시인 등과 무크지 <화전>을 발간하면서 문학청년으로 활약. 종합무역상사 해외지사에 근무, 모국어를 떠나 청장년기를 소진. 『문학마당』(2002년)과 격월간『정신과표현』(2003년)에 지면을 얻어 문단활동 시작. 시집으로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선정)와 『투투섬에 안 간 이유』 그리고 共著 무크지『꽃이 바람의 등을 밀다』가 있음.
목차
□ 시인의 말
1부 캡틴 캡, 모자^모자^모자^
해바라기 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아이스크림 역사서/던킨도넛Dunkin Donut속의 당나귀/당신이 떠나간 후에/아핫 하~, 하이퍼리얼리즘!/너바나nirvana의 길/통영에 가서 시를 쓰자/어떤 개인날의 상처 /불립문자들/캡틴 캡, 모자^모자^모자^/내 생의 아비뜌드habitude, 평택항/알로하 오에, 용량초과 부팅/수학에 대한 때늦은 후회
2부 캘리그라피 미래에의 확장
키스로 봉한 스틸 컷/코끼리구름 서식처/L의 외출/손가락 끈적거리는 밤하늘/그러자 브넹씨가 왔다/우로보로스Ouroboros로 가는 깊은 침묵/건지 아일랜드에서 감자껍질 요리하기/이 ☆의 신천지 부산정거장/무정부주의자의 달밤/데낄라는 43˚/아웨나무 숲/케추아어에 갇히다/캘리그래피 미래에의 확장
3부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두 대의 피아노와 당나귀/엘의 나라에서/실없는 확률론/팔라우의 경야經夜/바그다드의 밤/아니스Anise와 별/코끼리 코가 길어진다/밤의 가스파르Gaspard de la nuit/마크툽의 키스/의도적인 오역/투투섬에 안 간 이유/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그리고 엘가의 추억/마리포사Mariposa내 사랑
4부 카자르 세탁소
별들의 마그나카르타/탕헤르에서 비에 젖다/《새로운 세상》의 책/맙소사에 들다/아부다비/사막의 매부리코, 메브릭maverick/화요일 밤의 자동기술법/아마데우스 후일담/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내 생일-백 년 동안 지나갈 고독/태양의 언덕에 떠오른 계란반숙-The sunny side up fried egg/카자르 세탁소/구름의 헛기침/강아지 꾸꾸/관타나모에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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