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신해욱
나는 등이 가렵다
한 손에는 흰 돌을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있다.
우산 밖에는 비가 온다.
나는 천천히
어깨 너머로 머리를 돌려
등 뒤를 본다.
등 뒤에도 비가 온다.
그림자는 젖고
나는 잠깐
슬퍼질 뻔 한다.
말을 하고 싶다.
피와 살을 가진 생물처럼.
실감나게.
흰 쥐가 내 손을
떠나간다.
날면,
나는 날아갈 것 같다.
*신해욱 시집,『생물성』(문학과지성사,2009) 전문
순우리말(사라진 古語)로 우산을 슈룹이라 했던가.
정작 슈룹을 아는 시인조차 드물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신해욱의 우산은 어찌하여 이렇게도 유쾌할 수 있나.
그것은 우산이 아니라 천사의 날갯죽지였기에 말이다. 천사가 등이 가려운 이유는
어쩌다가 이 지상에 불시착할 때 날개대신 우산을 쓰고 강림했기 때문이다.
날갯죽지가 우산으로 변한 자리, 어깻죽지는 그래서 가려운 것이다.
아니라고? 아니면 말고(박정대식으로).
어쨌든 한 손엔 흰 돌 하나를, 나머지 하나밖에 안 남은 손에는 우산을 받쳐 쓴
특별한 이유가 뭔지 거기에 주목하기 바란다.
까다로운 독자여, 아니 게으른 이여, 상상하기 싫으면 말고.
그때 그대의 ‘그림자는 젖고/나는(그대들은) 잠깐 슬퍼질 뻔’할 것이다.
이윽고 천사와 말문이 열려 대화가 무르익게 되면, 누가 아니랴.
우리는(그대들은) 나는, 우산 속의 천사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
언어의 날개에 실려 떠나는 여행. 자유에의 비상, 상상력은 이렇게 즐거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를 쓰고 읽는다. 그것(천사와의 대화)은 곧 미학의 출발, 기쁨이다.
우리는 우리의 어깻죽지에 언어라는 날개를 얻어 어디든 날아오를 수 있을 뿐,
흰 쥐가 되어 쏘다니든 흰 돌이 되어 침잠하든 그 문제는 나중에 거론해도 늦지 않다.
독자여, 상상력이 닿는 곳 어디로든 마음껏 날아가 보라.
우산 밖 시의 행간에 쏟아지는 빗줄기가 갑자기 위험하다 싶어도 안심하라.
그때마다 언어의 날개를 단 수호천사가 그대 곁에 기필코 동행할 것이니.
김영찬(시인)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9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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