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인연이 깊은 사람 덕분에 무척이나 인상적인 시 두편을 접하게 되었다.
나에게 생소한 일본 여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Ibaragi Noriko)의 "내가 가장 예뻣을 때"와 "자신의 감수성 정도란" 시다.
"자신의 감수성 정도란" 시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를 부끄럽게 만든 시였으며,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제목이 참으로 특이한 시라는 생각이 앞섰다.
시인은 시대의 고통에 개인적인 감상을 얹어서 본대로 느낀대로 표현했다.
여성이기에 뒷전에서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이를 뛰어넘는 강인하고도 독립적인 자세로 이야기한다.
패전국의 국민이 되어서 속으로 감내해야만 했던 슬픔, 비애, 비굴함, 처절함, 절망감을 나름대로 우아하게 승화시켰다.
나라 전체에 온통 영향력을 내뿜는 승전국 미국의 정치적, 서양 문화 침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인생의 어두운 시절의 단면까지도 꾿꾿하게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의 구멍을 찿아서 이를 아주 담담하고 담백하게 적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콰르릉하고 무너지고
생각도 않던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부릴 실마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바쳐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깨끗한 눈짓만을 남기고 모두 떠나가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머리는 텅 비고
나의 마음은 무디었고/ 손발만에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엉터리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얼빠졌었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이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같이 그렇게
그런데, 이 시를 두번, 세번...
여러번 읽을 수록 왠지 내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강한 흡인력과 함께 나의 뒷골을 치는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시인의 가냘프고도 단아한 모습이 자꾸만 글과 섞인다.
눈을 감아본다.
내가 가장 예뻣을 때의 나는 어떤 꿈을 꾸었으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 한 어린 소녀의 낯익은 얼굴이 떠오른다.
작가의 인생 속에 서있는 희미해져버린 청춘의 나의 사진이 보이고, 현재의 내 삶 속에 그녀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녀의 암울했던 젊은 시절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내가 지내온 - 무채색의 꿈처럼 획 지나간 - 내 인생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나이 들어서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는 루오 할아버지는
죽지않고 꺼지지 않는 화려한 색깔을 지닌 청춘의 꿈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위안과 평화로움 마저 주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이 시는 내 머리에
미주 한인 문학의 선구자로 처절할 만큼 열심히 살다가 간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인터넷을 조금 뒤져봤다. 이바라기 노리꼬는 어떤 사람일까?
약사였었으나, 전후에 시인, 희곡 작가와 어린이 동화 작가로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전후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여류 시인 중의 한 명으로,
남성 중심인 일본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정치적과 사회적 소견을 갖고
글을 쓴 작가라고 간단한 인물평을 얻었다.
그리고,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져서 한글도 배우고, 윤동주 시인에 관해서 에세이도 썼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신의 부음 편지를 죽기 전에 써서 죽은 후에 보냈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도 떠났구나' 하고 한순간, 단지 한순간 기억해 주시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이 부음 편지를 읽는 순간 내 가슴은 뛰었다. 이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마지막 글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는 레자 로위쯔(Leza Lowitz)에 의해서 영어로 번역이 되어서
"Other Side River: Free Verse(vulume 2, 1995)란 시집을 통해서 미국에도 소개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발견은 이 시를 여러 명의 번역가들이 영어로 번역을 했는데, 조금씩은 다 다르게 제목을 번역한 것이다.
"When my beauty was at its best" 또는 "When I was at my prettiest"
혹은 "When I was at my most beautiful" 그리고 "When I was most beautiful"
내가 번역을 했다면 아마도 "When I was pretty the most" 라고 했을 것 같다.
이 모든 문장들이 결국은 다 같은 의미를 갖지만,
시에서의 어감은 어순과 단어 선택에 따라서 아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번역이란 것은 실로 어려운 문학 행위인 것 같다.
차학경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서 1961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하와이를 거쳐서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했다.
버클리 대학에서 비교 문학, 미술과 예술 학사와 석사를 받았고 파리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했다.
1975년 부터 다방면으로 예술적 두각을 나타내어서
미국 문단에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 작가의 존재를 알린 선구자 같은 미주 한인 작가이다.
하지만, 겨우 31살에 지금까지 영문도 모르게 뉴욕에서 한 남자의 총격을 맞고 유명을 달리한 아까운 인재이기도 하다.
그녀는 작가, 미술가, 행위 예술가, 사진 작가, 영화 제작자, 감독, 연기자, 시나리오 작가, 비평가라고 칭해진다.
이러한 그녀의 대표 저서는 영화에 관한 논문과 수필을 모은 어패라터스(Apparatus)와 산문시집인 딕테(Dictee)가 있다.
나는 딕테(Dictee, 김경년 번역) 를 처음 만났을 때에 난해하고 어려워서 책을 놓아버렸었다.
더우기 영어로 읽으려니 너무 골치가 아팠었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까지도 Post Modernism과 페미니즘을 기반으로한 훌륭한 작품으로 미국에서 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있다.
(1997년에 번역판이 나왔다.)
내가 그녀의 글이 담긴 딕테를 약간 이해할 수 있기 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
(사실, 지금도 그녀의 깊은 뜻과 상상력과 창조력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생소한 그림과 흑백 사진들, 불어로 쓴 시, 기도문과 낙서장, 난해한 문장, 상관없는 편지, 산문과 시의 융합...
퍽이나 다양하고 통일성이 없는 형이상학적인 내용들이 역사적인 실제 인물과 연관지어서 무질서하게 나열된 느낌이다.
빈 페이지와 빈 공간도 있고, 소리를 만드는 몸의 발성 기관을 그린 그림들도 있다.
한국 지도도 그려져있고 데레사 성녀와 유관순 열사의 사진도 있다.
친필로 쓴 편지도 들어있으며 작가의 엄마와 외할머니 사진도 실려있다.
딕테는 긴 산문집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장편 산문시라고도 한다. 독특한 양식이 너무도 독특해서 달리 표현할 능력이 없다.
다양한 언어(한국어, 영어, 불어, 라틴어, 한자)를 매개체로 흑백의 사진과 그림이 여기저기 툭툭 튀어 나온다.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들의 시대적 경험, 하느님과의 밀도있는 관계, 자서전적인 이야기,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이방인의 삶의 이야기를
9명의 그리스 신화의 여신들의 이름을 빌려와서 10개의 제목 아래 다양한 길이와 여러 형식의 글들이 모여있다.
한 마디로 무거운 책이다. 아마 차학경은 이상과 같은 천재였던 것 같다.
차학경의 딕테의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Page 21)
"문단 열고 그날은 첫날이었다 마침표 그녀는 먼 곳으로부터 왔다 마침표 오늘 저녁 식사 때 쉼표
가족들은 물을 것이다 쉼표 따옴표 열고 첫날이 어땠지 물음표 떠옴표 닫을 것 적어도
가능한 한 최소의 말을 하기 위해 쉼표 대답은 이럴 것이다 따옴표 열고 한 가지밖에 없어요
마침표 어떤 사람이 있어요 마침표 멀리서 온 마침표 따옴표 닫고"
멜포메네 비극 5장의 글에서는18년만에 한국에 귀국햇을 시의 작가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Page 102)
"18년이 지났습니다. 18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여기 왔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이 기억이 아직 생생할 때, 여전히 새로울 때,
이곳을 떠났습니다. 나는 다른 나라의 언어, 제2의 언어로 말합니다. 이것이 내가 얼마나 멀리 있나를 나타냅니다. 그때로부터,
그 시간으로 부터. 나는 그때로 돌아가 지금 아주 정확한 그 시간, 그 날짜, 그 계절, 그 연기 안개, 가랑비 속으로 정확하게 다시
돌아갑니다. 나는 모퉁이를 돌아서고 그곳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나와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도로엔 온통 돌조각들, 눈을
비비려고 손바닥을 눈에 대자 눈물이 마구 흘러내립니다. 책가방을 맨 두 학동이 서로 팔짱을 끼고 난데없이 나타납니다.
그들의 하얀 스카프, 그들의 하얀 교복 셔츠, 하얀 가스의 잔여물 속으로 울고 있습니다..........."
(이 글은 나의 감정이입이 쉬운 편이다.)
차학경을 소개하고 그녀의 글의 이해를 돋우기 위해서 그녀의 글을 옮기기에는 이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므로
이것으로 간단하게 끝내려고 한다.
내가 이바라기 노리꼬의 시에서 차학경이 연상된 것은
둘 다 국가가 인생에 미친 영향과 역사 속에 녹아있는 삶을 주관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의 시각으로 본 작가이기 때문인 것 같다.
시대의 역사적인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영위하려는 동일한 강한 의지를 지닌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위의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작가들이기에 나의 연상은 우스광스럽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을 치는 글을 쓰고, 틀에 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한 두 사람에게서
내가 누리지 못했던 젊은 날의 해방감을 맛보았다.
열심히 살다가 자국을 남기고 떠난 두 여성의 인생이 숭고하도록 아름답게 다가 오고 부럽기도 하다.
이들에게 던져진 한 세상의 노고가 얼마나 컸었는지는 모르지만...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분해한 세상을 단순하고 담백하게 또는 복선을 깔고 지그재그로 표출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며,
이런 자기 표출은 모든 작가들이 누리는 특권이자 축복으로 이 두 작가에게도 감정 정화와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이 글은 순전히 "내가 가장 예뻣을 때" 시를 읽고 떠오른 내 개인적인 생각을 두서없이 적은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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