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비평

조향(趙鄕) 시인의 시, 에스뀌스

바냔나무 2009. 5. 27. 15:50

조향(趙鄕) 시인의 시, 에스뀌스



ESQUISSE

 

 


 

 


                             ―조향(趙鄕)
              1
눈을 감으며.
SUNA는 내 손을 찾는다.
손을 사뿐 포개어 본다.
따스한 것이.
―――― 그저 그런 거예요!
―――― 뭐가?
―――― 세상이.
SUNA의 이마가 하아얗다. 넓다.


             2
SUNA의.
눈망울엔.
내 잃어버린 호수가 있다.
백조가 한 마리.
내 그 날의 산맥을 넘는다.


             3
가느다랗게.
스물다섯 살이 한숨을 한다.
―――― 또 나일 한 살 더 먹었어요!
SUNA는 다시 눈을 감고.
―――― 그저 그런 거예요!
아미에 하얀 수심이 어린다.

  
             4
―――― 속치마 바람인데.……
―――― 돌아서 줄까?
―――― 응!
유리창 너머 찬 하늘이 내 이마에 차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됐어요.

  
             5
SUNA가 화장을 한다.
―――― 화장도 예술 아녜요?
SUNA의 어깨 넘으로 내 얼굴이 쏘옥 돋아난다.
나란히 나와 SUNA의 얼굴이. 거울 안에서.
―――― 꼭 아버지와 딸 같아요.


             6
SUNA의 하얀 모가지에 목걸이.
목걸이에 예쁜 노란 열쇠가 달려 있다.
―――― 이걸로 당신의 비밀을 열어 보겠어요.


             7
STEFANO의 목청에 취하면서.
눈으로 SUNA를 만져 본다. 오랜 동안.
―――― 왜 그렇게 빤히 보세요?
―――― 이뻐서.
―――― 그저 그런 거예요!


             8
나의 SUNA와 헤어진다.
까아만 밤 ․ 거리 .
택시
프론트 그라스에 마구 달겨드는.
진눈깨비 같은 나비떼 같은.
내 허망의 쪼각 쪼각들.
앙가슴에 마구 받아 안으며.
SUNA의 눈망울이.
검은 하늘에 참은 많이 박혀 있다.
깜박인다.
「그저 그런 거예요」



               *自由文學, 4월호(1960년)


조향(趙鄕)전집 <열음사> 1994년 간행(刊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