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비평

김영찬 신작 소시집(신작시 와 산문)

바냔나무 2009. 3. 19. 16:58

 

 

 

 

문학마당 김영찬 신작소시집:


시, 코끼리구름을 보다 외 4편 및 산문,

래디컬 리얼리즘radical realism 의 창문을 열다, 아니 걸어 잠그다



코끼리구름을 보다

                                                     김영찬

 




골키퍼 없는 빈 골대에 공을 차 넣고 우히힛~ 우훗^
즐거워하는 인생도
인생이다
그런데
그게 어때서, 라고
고개 끄덕이려고 하다가
k는 빨대 물고 홀짝이던 냉커피를 놓쳐 땅바닥에 쏟는다 
입속에 가둔 얼음조각을 부수느라
와작와작 와르릉, 고막을 찢는 천둥소리는

―코를 말아 올리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코끼리구름의 표정

뉴펀들랜드 해역에 초호화 유람선이 정박한다
밤마다 불 밝혀 루체비스타, 행복을 폭죽 터트리는가 싶더니
얼음에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하고 SOS,
조난신청을 하자마자 팍스 아메리카나 드림 엔터프라즈 사 소속
쇄빙선 한 척이 백만분의
1초 안에,
물론(필연적으로) 광속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달려오도록 돼있는 시놉시스

―조작극도 당연히 극이다

여우비가 슬쩍 콧잔등이 문지르고 지나간 뒤의
거대 담론
포식자들의 허파 속에 뛰어든 황금무지개는 콧김 센 자들의
이모티콘이 되고
코끼리 귀는 어쨌거나(아무튼 마지못해서라도) 날개로 진화될 수밖에
별 다른 도리가 없다면

—저기 저쪽 창밖으로 흐르는 자이언트 흰 구름은
코끼리들의
오랜 친구였던 무관심일 뿐


 


바그다드의 밤

                                              김영찬

 

 



한 남자가 고래 뱃속에 헌 구두를 함부로 집어던졌습니다

그의 이름은 문타다르 알자이디 منتظر الزيدي‎,
Muntadar Al-Zayidi

부시맨은 그 때 영민한 척 재빨리 사태를 피했습니다
아슬아슬 참변을 모면했지만 피하지 못한
그 신발의 문수란
지상의 모든 신발 치수를 전부 합한 것보다 크고
그 무게 또한
포토맥 강변에 횃불 들고 서 있는
청동여신상의 체중보다 무거울 거라는데
그런걸 알아서 뭐 할 거냐고
쓰잘데기 없이 흐르던 시간이 구두끈 풀어제낀 거겠죠

―바그다드 카페에 어쨌든 뜨거운 커피가 엎질러졌습니다

시커먼 고래 뱃속으로 대서양 물이 흘러들었거나 말거나
그 참……, 그런데 거기가
어느 혹성
어느 골목이었더라?
어디든 모래 언덕이면 그림자가 순결한 곳


문 없는 문 앞에서
맨발인 구두 주인은 자기가 던진 구두를 기다릴 터인데
그가 집어던져 그에게서 떠난 구두가
그를 찾아오기 까지,
알 함두릴라!

바그다드에는 원래 카페가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헌 구두 따위는 결코 날아다니지 않던
―바그다드의 밤

바그다드 카페에 뜨거운 커피가 아무튼 엎질러진 게 문젭니다


 



그러자 브넹씨가 왔다

                                                                                                                                                    김영찬



브넹씨의 수염은 원래 연녹색이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중해를 향해 열어 제킨 아치형 대문 같은 들창코가 각도에 따라 콧날 휜 매부리코였던가…, 그것은 조금도,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고 가당치도 않은 풍문을 수집하느라 지갑 속의 빳빳한 지폐 이외에 모든 걸 낭비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브넹씨의 내력을 파헤친 이는 아직 아무도 없다 그가 베니스 상인에게 팔려가는 당나귀 같은 몰골로 난파당한 무역선을 타고 왔다느니 개선한 오도아케르 용병처럼 위세 좋게 거드름을 피우며 입성했던 기억이 난다느니 남 말하기 좋아하는 낭인들은 끄다만 담배꽁초 주워 물듯 흔하디흔한 풍문 속에 그를 재출현시켜 입방아놀 뿐이다

브넹씨가 건재하다고? 어쨌든 성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가 품세 좋은 십자군 원정대의 외모에 청부살인 저격수 같은 방탄복까지 입고 나타났는지, 우루루 몰리고 쏠리는 소문에 밤잠을 설칠 지경 그런데도 브넹씨를 목격한 사람은 정작 팔짱을 낀 채 말을 아꼈다 브넹씨가 왔다 그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나 사실 이상의 사실이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사실처럼 중요하고 사실이므로 그것은 사실상 현실이 되었다 어떻게 그가 그렇게 판세를 바꿔 재등장, 그처럼 위세를 떨칠 수 있단 말인가 괄시와 모략, 이단으로 내몰던 일을 치유하고 복원한들 그런 과거는 불구가 된다

                              브냉씨가 살아났다, 아니 죽었으나
                                          살아서 활동 중이다
                              믿을 수 없다면, 그것은 진짜 브넹씨가 
                                          아닐 수도 있다
                              진짜가 아니라면 분명히 말도 안 되는 가짜는 
                                          오히려 가짜로서 진짜다

진위와 상관없이 고위직들은 모두 외유로 빠져나가고 피신하지 못한 말단들만 산으로 도피하는 일련의 산사태 행각이 어쨌거나 발생했다 도성 안에는 이제 적막한 침묵과 생쥐 몇 마리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브넹씨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분노로 이글이글 불덩이 같아야 할 그의 눈동자, 그의 얼굴에는 그러나 태풍 지나간 하늘처럼 맑고 청량한 표정만 담겨 있었다

브넹씨는 오랫동안 혼자였으며 참으로 지금도 철저히 혼자인 것이다




사막의 maverick

                                                      김영찬




사람들은 이제 사막에 들거나 별의 원적지까지 찾아가
일부러 탐문, 탐색하지 않는다
뭐 하러 그 먼 데까지 여비 들여 찾아가겠는가?
손가락 하나로 알데바란 별자리 나와라
Enter~!
나와라 오버~ Enter 키만 두드리면
알데바란 성단의 별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고
사마악―, 하고 입술만 오므려 말해도
룹알할리 사막에 사는 전갈이
왼쪽으로 구부린 꼬리 들어 인사할 텐데

누가 이 시대에 사막을 사막답게 보존하지 못해
목마르다 외치고
잘못 태어난 혹성에서
별자리를 잘못 읽어 길을 잃고 혼자인 척
엄살 피워 위로받겠는가?

시인들은 결코 알데바란 성단까지 상상력을 확장시키거나
룹알할리 사막을 덮는 모래바람 속에 파묻혀 볼
꿈도 꾸지 않는다
꿈속에라도
달 표면으로 걸어가 인간의 발자국을 물청소하는 대신
책상에 앉아 룹알할리! 알데바란!
탐색창을 열고 상상력 동원 명령만 내리면
야생성이 살아난 방울뱀이 찌르르 울고
스타다스트 은하분진들이 와루루 예비군들처럼 몰려나와
모니터 언덕을 금방 꾸며줄 텐데




아부다비

                                             김영찬

 

 



Gulf Air 비행기를 타고
하드라마우트 북부 룹알할리 사막에 불시착하던 날
모래바람 속에서 나를 꺼내 감싸준
아/부/다/비
아 부다(Buddha)의 비(碑)나 비(悲)로 읽으면 실례겠지만
그 이름은 금석문을 떠올리는 자구(字句)
이상하게도 가슴 부풀고
낙타의 단봉처럼 머릿속에 솟아올라
이정표가 되는

내 뼛속에 은거한 도시
아부다비

가난한 영혼은 어딜 가도 오아시스처럼 수줍음만 타네
내 안의 모든 동쪽을 다 뒤져 찾아나서도
나타나는 법이 없는
검푸른 물미역 꼭지 같이 건강한 팔뚝에
물방울 뚝뚝 떨어뜨리는 상징
아^부^다^비

터번을 빌려 쓴 나는 흙먼지 속을 타달타달 걷지
카라반도 순례자도 아닌 주제에
메카로 가는 길, 뜨거운 모래 위에 무수한
발자국만 찍지
비행기 엔진을 고치고 토호국 두바이로 떠날 때
아라베스크 문양 찬란한 아스토리아 호텔 로비로 찾아와서
나를 포옹한 뒤
낙타의 긴 창자 속으로 홀연 잠적한
그 길로 통하는 법을 나는 알지, 나만이 알고 있고말고!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허리에 접어두겠지만
다비(茶毘)를 위한 먼 길이던가
아부/다비(亞父/多肥)

 




《신작 소시집 산문》
래디컬 리얼리즘(radical realism)의 창문을 열다, 아니 걸어 잠그다

                                                                                             김영찬(시인)



 환상적 리얼,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는 나에게 래디컬 리얼리즘(radical realism)의 창문을 열도록 강요한다. 나는 곧 바로 그 창을 열었다가 도로 닫는다. 그처럼 높은 곳에 열려있어 너무 좁기도 하고 인적조차 드문 그런 혹성에서 그 창틀을 통해 인간의 마을로 통행하기란 아직 많은 한계와 불편이 따르기 때문이다. 낭인들은 아무리 멋진 창문을 열어줘도 낯선 창밖 경치를 바르게 완상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런 건 이미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만 제대로 문제 삼자면 치명적으로 그렇다. 그것은 관습의 눈높이가 너무 낮게 설정돼 있고 숨기 좋고 감추기 좋도록 돼있어 다른 각도로 조명됐을 경우 거기까지 시력이 못 미치는 데 원인이 있지만 게으름 탓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이유라면 그 창문으로 이르는 길이 너무 고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비용이라면 도대체 그 창문을 열고 닫는데 어느 정도의 어떤 노력의 댓가가 요구되는 것인가.
사실 우리 모두는 사이코패스들이다. 의식하고 있으나 의식을 회피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그 의식을 제자리로 돌려놓자면 고부가가치를 얻는데 필요한 정보능력, 활동력, 열정과 투자 그 이상의 절대적 노력, 에너지 투자가 요구된다. 그 투자에 대한 결과적 가치란 게으른 낭인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요인으로 자리매김 될 리가 없다. 무의식의 의식화, 의식의 무의식화. 뭐가 뭔지 뒤숭숭 아무렇게나 뒤섞인 채 무방비 상태다. 분명한 것은 의식도 무의식도 결국은 한 통속, 한 테두리 안에 동의어로 공생한다는 사실. 그런데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으려는 해이함보다 더 큰 문제는 의식의 바깥 세계에 대한 몰이해와 억측, 편견 등이다. 래디컬한 리얼리즘 안에서는 환상도 무의식도 경계가 없다. 그것은 사실 이상의 사실, 진실이든 아니든 real로 합일될 뿐이다.

 시를 얘기하는 대신, 당신은 밀로라드 파비치(Milorad Pavic)의 소설, 『카자르 사전』을 찾아 들척인 적이 있는가. 생각 같아선 파비치의『카자르 사전』을 얻지 못한 사람은 시인 자격이 없노라고 공언하고 싶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 역시 그 사전을 품지 못했으므로 그 말을 삼가야겠다. 그 대신 사전을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여러 번 되새김 하고 싶으나 그것은 잔인할 뿐 독선적인 일이다. 죄가 된다. 이기적이고 무뢰한 행위가 용서되는 예는 드물다. 아무도 환상의 껍질 속에 든 진실, 진실에 가려진 환상, 유리병에 갇힌 진실이든 사실이든 환상이든 상관없이 후 불어 날려버리고 싶은 물상들은 도처에 날개를 달고 저희들 끼리 히히덕 헤비작거린다.

 “아테 공주 덕분에 카간이 유대식 기도용 외투와 유대교 율법 토라를 받아들이자, 논쟁에 참석한 다른 대표들은 화가 났다.”로 이야기는 시작되던가.

 


  이슬람 악마는 아테 공주에게 카자르어와 자기가 쓴 시를 모두 잊어버리도록 벌을 내렸다. 그 결과 아테 공주는 연인의 이름마저 잊어버렸다. 아테 공주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물고기처럼 생긴 열매의 이름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 전에 아테 공주는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사람이 하는 말을 흉내 낼 수 있는 앵무새를 잡아 오도록 명령했다. 궁전에 앵무새를 데려온 것은 ‘카자르 사전’에 나오는 단어들을 모두 외우게 하기 위해서였다.
앵무새 한 마리당 한 항목씩 외우게 해서 밤이건 낮이건 필요한 때에는 언제라도 외우고 있는 내용을 암송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시는 모두 카자르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앵무새들이 외우고 있는 내용도 카자르어 어휘들이었다.

 카자르 종교가 버림받고 카자르어가 갑자기 죽어가기 시작할 때, 아테 공주는 ‘자르 사전’ 내용을 모두 알고 있는 앵무새들을 전부 풀어 주며 앵무새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서 다른 새들에게 날아가서 너희들이 알고 있는 시를 가르쳐 주어라.
머잖아 여기 사람들은 아무도 그 시를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앵무새들은 흑해의 숲으로 날아가 자기들이 알고 있는 시를 다른 앵무새들에게 가르쳤으며, 이 새들은 또 다른 새들에게 그 시를 가르쳤다. 때가 되자 이 시들과 카자르 언어를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앵무새들뿐이었다. 17세기 흑해 지역에서 잡힌 앵무새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여러 편의 시를 그렇게 암송했다.

 이 새의 주인은 아브람 브란코비치라는 콘스탄티노플의 한 외교관이었는데, 그 사람은 새가 하는 말이 카자르어라고 주장했다. 아브람 브란코비치는 필사를 할 서기를 한 사람 불러다가 앵무새가 하는 말을 모조리 받아 적으라고 했다. 아테 공주가 지었던 [앵무새의 시]에 대해 밝혀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앵무새의 시]는 다우브마누스 판 <자르 사전>에 실리게 되었다.

 아테 공주가 ‘꿈 사냥꾼’ 혹은 꿈을 읽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카자르에서 가장 유력한 집단의 후견인이었다는 사실도 언급하고 넘어가야 한다.

 아테 공주의 백과사전이라는 것도 사실은 꿈 사냥꾼들이 수세기에 걸쳐 자신들의 경험을 기록해 놓은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려고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주의 연인은 젊고 두 눈이 맑았지만 이 집단의 사제들 가운데에는 이미 저명 인사였다. 아테 공주의 시 중에는 꿈 사냥꾼들의 수석 사제에게 바친 시가 있다.


깊은 밤, 우리는 잠을 잘 때마다
모두 배우로 변합니다.
우리는 매번 다른 무대에 올라서서
충실하게 자신의 배역을 공연합니다.
그렇다면 낮에는?
낮에 깨어 있을 때에는 그 배역을 연습합니다.
때때로 자기의 배역을 제대로 연습하지 못했을 때에는
감히 무대에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 대신 다른 배우들 뒤에 숨어 있습니다.
그 배우들은 자신들의 대사를 잘 알고 있고
동작도 우리보다 더욱 훌륭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우리가 연기하는 것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찾아옵니다.
극장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연습을 잘 해 두었던 날에
당신들이 나를 쳐다본다면 좋겠습니다.
일주일 내내 현명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없으니까요.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카자르 궁전에서 벌어진 카자르 논쟁 당시, 분노에 찬 아랍 선교사와 희랍 선교사로부터 아테 공주를 구해낸 것은 유대교 측 대표라고 한다. 유대교 측 대표는 아테 공주의 연인이었던 ‘꿈 사냥꾼 수석 사제’가 아테 공주를 대신해서 벌을 받도록 일을 처리했다. 아테 공주는 그 결정을 받아들였고 공주의 연인인 ‘꿈 사냥꾼’은 추방되어 물 위에 매달린 우리 속에 갇혔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도 아테 공주가 벌을 면할 수는 없었다.

 밀로라드 파비치, 『카자르 사전』중에서 중암M&B 간행, 신형철 옮김

 

 


*
 소설『카자르 사전』의 구성은 뒤죽박죽 꿈과 현실, 과거/현재/미래가 질서 없이 뒤얽힌다. 인물들은 누가 누군지 헷갈리기 마련인데 기독교인 아브람 브란코비치, 유대인 사무엘 코헨 및 회교도인 마수디. 이들 세 종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은 경계가 모호한 하나의 세계 <하나>에서 분할 된 분신들이기 때문에 언제든 한 사람으로 합성될 요소를 지니고 있다. 아브람 브란코비치가 사무엘 코헨이 되다가 사무엘 코헨으로 위치를 바꾸는 것은 꿈속에서나 뒤얽히는 사건개요가 아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에서 분리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서로 관계하고 통합되며 꿈과 현실을 구태여 구분할 필요가 없이 서로를 분간하지 못한 채 타자와 화자로서 헤맬 분이다.

 ‘카자르 사전’에 수록된 어휘를 하나씩 둘씩 끌어내어 탐문해가는 이야기의 흐름은 현실 그 이상의 현실, 환상 그 자체로써 환상적 실체로 융합된 하나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논리적, 필연적 어법으로 서술한 서사가 아니라 아무리 맞추려 해도 맞아떨어지지 않는 퍼즐 맞추기처럼 언어와 언어가 갈수록 간극을 벌이며 도무지 알 수 없고 이상한 형태의 퍼즐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실은 처음부터 어긋나도록 설정된 퍼즐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역설적으로 타당하고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이 지적유희는 바로 <언어의 유희>라는 데 마술적 매력을 더한다. 언어를 갖고 노는 <말놀이>는 본래 공을 갖고 노는 <공놀이>나 불을 갖고 노는 <불장난> 못지않게 흥분과 자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던가. 그 말놀이의 도구인 말의 경전, 『카자르 사전』이 없어진다면 카자르의 운명, 그 나라의 아테 공주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주는 현명했다. 아니 현명하지 못하고 어리석었다. 의미를 체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의미 없는 발성을 통해 <카자르 사전>에 수록된 어휘들을 어렴풋이 지켜준 카자르의 앵무새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엊저녁 앵무새 한 마리가 내 침상에 날아와서 몇몇 카자르 어휘를 선물로 주고 갔다. 꿈속에서 받아 적은 그 단어를 찾기 위해 <카자르 사전>을 온통 뒤져야하나 말아야 하나.

(긑)



《문학마당》 2009년 3월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