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에 내리는 비
김영찬
*
칠레 아타카마사막의 과나코낙타는 사바나코끼리를 만나러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는 고집은 그러나
스스로 말뚝에 묶인다
63빌딩 옆 리젠시아오피스텔, 그 건물의 국기봉에 걸린
구름 한 조각
김대리는 혼자 월말 정산 중이다
유리창을 투과하는 바람소리, 굴뚝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문들로 거리는 일대혼잡 중
몽상가들은 그런데 언제 어디로든 떠난다
관타나모공군기지, 콴타나빌라 오호호~ 콴타나빌라, 응응~
자메이카에 두고 온 내 사랑은
레게음악의 향수
그 옛날 호수돈여고생들은 단추구멍에 박용래시인의 구절초를
꽂고 다녔지
*
트럼펫, 트럼프, 드럼통, 트림, 비틀어 비틀기, 뒤틀림
몽상가들은 우연히 만나도 논의한다
목요일이 지나는 창가의 밤엔 바뤼흐 스피노자를 만나자,고
아타락시아ataraxia, 에티카Ethica의 정적
마음 독본, 독법
리기다소나무를 심을까, 숙의한다
you don't bring me a flower any more, 아무도 꽃을 가져다주지 않는
이상한 관습의 나라
꼰니페 임마추며 사랑을 속싸겨써찌~, 튤립꽃이 꽃잎을 사뿐 열어
내 입술에 아침을 배달하곤 했네
달빛침낭에 얽힌 비밀들
글렌 굴드의 연주, 바흐의 클라비어 전곡은 농염하지 않아 지루해
토카타와 푸가 d단조에 흐르는 숨결에 편승하여
몰래 그녀 곁으로 잠들곤 했지
다시 관타나모,
공군기지 관제탑에 퍼붓는 비
빗속을 뚫고 전투기 한 대가 내리려했으나 활주로가 거부하여
되돌아갈 콴타나빌라는 험난한 도정
유징이 없다고 폐광됐던 제13공구에서 원유가 불기둥 뿜어
노다지를 쏟아낼 것이다
당장은 말고 내일 아침 조간신문 1면 또는 엠비시 tv
네모 상자 안에서
그런데 나는
내 마음을 햇빛 바깥에 두고
머나먼 길 떠나게 되리
드디어 떠나게 될 것이다 콴타나빌라 오호호~ 콴타나빌라,
응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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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콴타나빌라: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과히라 관타나메라(guajira Guantanamera)로 후렴이 반복되는 노래.
'관타나모 아가씨는 촌뜨기, 촌뜨기 관타나모 아가씨'라는 뜻.
'촌뜨기 관타나모 아가씨여/나는 종료나무가 자라는 곳에서 온 성실한 남자/죽기 전에 내 영혼의 시들을 뿌리고 싶네' [중략] '나의 시는 밝은 푸르름에서 왔다네. [중략]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나는 시를 뿌리고 싶네./바다보다 산 속의 시냇물과 함께 하겠네.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 이 아름다운 노래는 쿠바의 '비공식 국가'로 불리는 혁명가요가 되었다. 요즘도 쿠바의 민중들이 어디서나 즐겨 부르는 노래.
전문시지 "시안" 200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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