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비평

장강(長江)의 물은 뒤엣물이 앞엣물을 밀어내는 힘으로 바다에 이른다

바냔나무 2013. 5. 30. 12:29

 

장강(長江)의 물은 뒤엣물이 앞엣물을 밀어내는 힘으로 바다에 이른다

   ―신인들의 활력에 등 떠밀려 함께 대양에 닿고자 하는 열망으로.

 

                                                                                                        김영찬(시인)

 

 

  시시인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나날이 되풀이 되는 일상(日常)의 지겨움으로부터 탈피, 도주하고 싶어서? 저 타협(妥協)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 불온(不穩)하고 부자유한 삶에 대한 항거, 잃어버린 자아(自我)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 어쨌든 간에 보듬어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수습, 정서적인 안정을 취하기 위하여? 그게 아니라면, 저 불가능한 높이에 목표를 두고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달려왔으나 도달할 수 없는 꿈에 좌절, 피 흘린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한 최소한의 위무(慰撫)로?

  맞은 말이다. 그러나 시를 쓰를 이유를 이렇게 거창하게 늘어놓는 건 이제 유치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 자신을 아우르는 자가치유(自家治癒)의 목적이 뒤따르긴 하나 그 이전에 솔직히 자기과시의 표현의지가 선행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시인은 자기자신을 들어냄, 그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발표욕이란 일종의 자기과시인 것이다. 이렇듯 솔직한 개인적 행위가 곧 시인이 처한 사회에 깊이 간여, 현실정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것을 목적으로 시를 쓴다면 그것은 유치한 일이다. 시작(詩作)의 의의를 독자의 영향권 안에 두다니 진부하고 고리타분하다. 시인의 위상이란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이 행하되 작품으로써 자신의 왕국을 건설해야 한다. 처음부터 독자를 감동시켜 계도(啓導)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목적 하에 시를 쓰겠다는 의지는 천박하다.

  시인은 그냥 시가 써지므로 쓴다. 진솔하고 간명한 이 대답 속에는 현실에 대한 반발(反撥)이 은연중 작동한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시인은 시인이 처한 현실이라는 무대를 떠날 수가 없다. 현실이란 현재성이다. 즉, 시인은 의식 중이 건 무의식 중이 건 당면한 현실에 눈을 뜨고 동시대를 들여다보며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동시대의 관찰자로서, 동시대를 기록하는 기록자로서 시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정화 의지란 시인 자신이 이 시대의 파수꾼이 되어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냥 써지기 때문에 썼을 뿐인데…, 온당한 시인의 자세란 그런 것이다. 그렇게 쓴 시는 이미 자신을 떠나 독자에게 가 있다. 그뿐, 시는 감동이나 감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느낌을 전달한다(T.S 엘리엇). 이런 시를 자연발생적 순수시라고 일컫고 싶다. 거기에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욕구도 없다. 공허한 공간으로써 그러나 우리가 맘 편히 그냥 공짜로 공유해도 좋은 휴식이 행간(行間)마다 배어있는 것이다.

 

  

                                                                  *

 

 

  웹진 《시인광장》의 신인상 응모작이 예년과 비슷한 응모자 수와 거의 같은 수량의 작품으로 마감되었다. 경향각지에서 심지어 해외동포와 중국 연변에 사는 교포로부터도 응모작이 접수된 걸 보면 웹진의 독자가 전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음을 반증한다. 올해의 작품수준을 굳이 거론하자면, 많은 응모작품이 일인칭 화자(話者)인 나를 내세워 할말을 다하겠다는 욕심이 과한 듯하다. 그 결과 진술이 길어졌다는 단점이 지적된다. 개인의 삶이 그만큼 어려워진 탓인가. 물질적으로 곤궁해진 피로를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통해 극복해보겠다는 의지의 발상으로 보아야할 것인가. 글쎄 손쉬운 배설에 의한 카타르시스란 유치한 것이라고 함부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시(詩)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않고 뒤에 접어두는 묘미가 더해질 때 다른 장르의 문학과 대별된다. 은유로써 혹은 감춰진 말로 침묵의 행간을 넓히고 주제를 감싸고도는 빠롤parole이 흩어져있는 듯하나 큰 틀의 알레고리로 통합돼 전체를 아우르는 에너지로 환원될 때 작품은 생명을 얻어 약동한다. 시적효과의 극대화란 과감한 생략에 의한 시적 긴장이 고조될 때 비로소 압축에 의한 강세효과가 증폭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작품을 보는 심사위원들의 시선은 거의 동일할 정도로 일치했다. 최형심 편집장이 모아서 e-mail로 보내온 응모작품 전부를 5명의 심사위원이 각자 심사한 후 의견을 말하는 형식을 취했다.

  웹진 《시인광장》 김백겸 주간은, 이여울의 <공기번데기> 외 4편, 구효경의 <쇼팽의 푸른 노트와 벙어리가수의 서가> 외 4편, 김도은의 <터미널케이스에 갇힌 열일곱> 외 4편 및 안민의 <피아노> 외 4편을 관심 있게 읽었으나 이중에서도 안민의 시가 참신성과 시적 사유, 표현의 안정성에 역량을 보여 올해의 신인상 추보자로 삼고 싶다고 추천했다.

  여기에  웹진 《시인광장》 우원호 발행인 겸 편집인이 이의 없이 동의했고, 시인광장 편집위원이자 국문학교수로서 시를 보는 안목이 넓은 윤의섭 시인은 응모자의 이름을 거론하는 대신, <오래된 인형>, <우리는 함께 책을 읽었다>, <허수아비>, <나는 초콜릿 복근을 좋아한다> 및 <나는 사진입니다> 등의 응모작에 표를 던지며 안민을 당선자로 뽑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시인광장 편집위원이자 활달한 현장 비평가인 이성혁 평론가는 눈에 들어온 응모자는 이여울, 구효경, 변희상, 안민, 이주 등으로서 가장 안정적인 작품수준을 보여주는 이주 씨, 상상력이 활달한 구효경 씨의 글 솜씨가 돋보이지만 다소 미숙한 점이 보이더라도 열정과 저력 면에서 탁월한 안민 씨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피력했다.

  네 분의 의견을 접하기 이전에 내가 이여울, 안민, 구효경, 김도은, 허민, 변희상, 이주의 작품을 자체적으로 적극 검토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모두들 그만한 수준에 든 분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현상이다. 내심 이여울과 안민 쪽으로 생각을 좁히다가 다른 심사위원들의 심사결과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안민의 작품에 기꺼이 낙점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안민의 시는 신인다운 참신성과 돌올한 포에지의 발현, 풍부한 상상력에 주재를 끌고 가는 문체 또한 활기차다는 점에서 다른 응모자를 압도한다. 그의 시적 모티브는 모던할 뿐만 아니라 개성을 추구하기에 충분한 역량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믿음직스럽다. 당선을 축하한다.

  장강(長江)의 뒤엣물이 앞엣물을 밀어내는 힘으로 흘러가 바다에 이르듯이 기성 시인들을 밀어낼 수 있는 신인으로서 역량을 발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예술가는 작품으로써만 말하고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웹진 시인광장의 자랑거리는 오로지 작품만 보고 평가한다는 점이다. 감춰진 익명성(匿名性) 위에 철저히 작품 위주로 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준칙은 신인상뿐만 아니라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시 작품상> 및 <웹진 시인광장 작품상> 전체에 걸쳐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비록 선외로 밀려났지만 혼신을 다해 작품을 다듬어 응모해주신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 예술가란 핍박을 받을수록 더욱 단련되는 법. 진정한 예술가에게 명예란 수치스러운 것. 과소평가에 의한 무명의 아픔을 딛고 일어설 때 참다운 예술가의 안광(眼光)이 빛나는 것이라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공손히 말씀드린다.   김영찬(시인,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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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당선작 5편 중에서)

   

                                        안 민

 

  

  피아노가 죽은 뒤에도 나는 여전히 피아노다

  몸 안에 현이 심어져 있다 눈을 감으면

  캄캄한 기억 속을 방문하는 창백한 소녀

  손가락 사이에서 푸른 새들이 난다

  손톱에는 붉은 꽃잎이 비치고

  에테르, 너울거리며 밀려오는 에테르

  나는 피아노 선율처럼 흘러온 것이다

  악보 같은 차트를 흔들며 들어서는 흰 가운들

  저들은 왜 검은 빛을 흘리는 걸까 피아노인가

  病人이 아니라 피아노로 살아온 것에 대해

  동공이 먼저 증거할 때 나는 열일곱 살이 된다  

 

  어둠을 진동시켜 소리가 들리게 되는 거죠 잠이 내려가는

  깊이는 약 10mm이고 잠의 무게는 50g 전후입니다 저음은

  아주 무겁게 고음은 조금만 가볍게 조정되어있어요 뼈는

  장식성을 고려하여 아크릴이나 인공 상아, 베이크라이트 등의

  합성수지일 것입니다 뼈를 잠 속에 빠트려 그 공률로 현을

  치게 됩니다 악몽은 이때 완성되죠 조율되지 못할 만큼

  자랐습니다

 

  흰 가운들이 피아노를 판독하기 위해

  내 몸을 밀폐된 통속에 밀어 넣는다

  뚜뚜뚜뚜 징징징징 디디디디 쿵쿵쿵쿵

  두개골 안에서 낙엽이 흩날린다

  졸면 안 돼 졸면 안 돼…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내 심장을 만진다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내 동공을 만진다

  나도 소녀를 만진다

  내 그림자를 소녀 그림자에 포개 놓는다

  하얀 건반 하얀 가슴 까만 건반 까만 거기

  하얀 어둠 까만 어둠 망막이 젖는 소녀

  빗물 같은 음악이 된다 도시라솔파미래도

  피아노가 소녀의 손목을 잡고

  아득한 저음으로 내려간다

  뚜뚜뚜뚜 징징징징 디디디디 쿵쿵쿵쿵

  내 몸속 피아노는 귀를 틀어막고 있고

  악보는 홀로 펄럭이고

 

*웹진 《시인광장》 2013년 신인상 당선작 중에서

 

 

안민 (본명: 안병호) 시인

경남 김해에서 출생하여 부산에서 성장. 동국대학교 회계학과 졸업.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3년 제2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당선.  

e-메일: dominiko8@hanmail.net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출처] 2013' 제2회 '웹진 시인광장 新人賞 公募 당선시 당선: 안민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2013년 6월호 ㅡ통호 제52호ㅡ |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