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시를 놀이로 알고 즐길 수 있는 행운/오태환

바냔나무 2011. 3. 5. 11:46

좋은 시집 다시 읽기

 

 ㅡ 김영찬 시인의『불멸을 힐끗 쳐다보다』ㅡ

 

 

2007년.

 

 [추천글]

첫 시집을 내는 김영찬 시인에게 왜 여기 감동과 찬사를 쓰는가. 이 시인의 남다른, 확실한 자기 스타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종 다종의 사물과 기분을 연결하고 변주하여 - 복합적 sophisticated이고도 오늘 날적contemporary인 - 만화경적 정서를 쌓아올리는 것을 보시라. 공간 이동의 감각은 활달하고, 사물에 날 것, 또는 악마적인 이름 붙이기, 그리고 엔딩 변환이 거침없다. 시들이 다 새롭고 날카롭고 유쾌하도록 엉뚱스럽다. 프랑스 퇴폐주의 악마주의의 번역시를 읽는 느낌도 들었다면 실례인가.   

―박의상(시인) 



   *

여기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배기지 못하는 한 사내가 있다고 치자. 막 페가수스성좌星座를 넘은 기압골 때문이든 몽골초원의 밤안개 때문이든, 그의 트렌치코트는 늘 어깨부터 젖어 있기 마련이지만, 그가 단단히 끈을 조인 흰 운동화는 햇빛이 열대식물처럼 새뜻이 우거진 남양군도南洋群島의 카나리아처럼 명랑하다. 도대체 편답만리遍踏萬里 낭인 치고, 그의 언어 안에는 알렉산드리아행 편도 항공티켓의 우수도 다 닳은 물소가죽 구두의 피로도 낌새조차 남아 있지 않다.

  ‘불멸不滅’을 찾아 떠나는 베가본드. 프랑스풍의 교양과 사유로 날을 벼린 활기찬 시인에게 불멸은 밤을 섭정攝政하는 고양이의 푸른 안광에도 있고, 두 시간 저쪽으로 거세게 부는 바람에도 있고, 푼타아레나스 상공을 나는 철새들에도 있고, 돼지 뒷다리 묶을 축자에도 있다. 아이스크림 같고 밀항자 같고 차양 깊은 모자 같은 불멸의 상쾌한 시뮬라르크. 키보드 앞에서 휘파람을 날리듯 불멸을 무한 복제하는 김영찬한테 그것은 이미 복사기에서 금방 꺼낸 신용장의 따뜻한 촉감처럼, 또는 앤디워홀이 막후幕後에서 뿜는 파이프담배 연기처럼 흔적 없이 사라질 찰나의 기호와 다르지 않다. 이제 그는 아무 귀에나 대고 속삭인다. 여름아, 그런데 아직도 너! 는 고독하니?

  시를 놀이로 알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건 행운이다. 그의 이국정서가 감상이나 겉멋에서 벗어나 있고, 그의 모험이 모더니즘(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에서 비껴설 수 있는 것은 첼로의 선율에서 그늘 반 근만큼의 떨림을 가늠하는 밝은 눈과 귀를 지녔기 때문이다.

―오태환(시인)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 #11-1
-장미빛 인생 La vie en rose

                                        김영찬




생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어가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만 하러 옹달샘 가에 나왔다가
물만 먹고 돌아가서 안 될 게 뭐
있느냐는 것

범부채꽃이 요란하게 부채를 흔들고
콧수염 건방진 원숭이가 엉덩이를 긁는다고 범이 버럭 화내며
역린(逆鱗)을 세울
이유가 뭐 있냐고!

바람이 분다, 그래 바람의 갈기를
움켜줘 봐라
장미꽃 꽃술 속으로 파고들어가 꿀샘이나
장악해 보라고!

La vie en rose
넝쿨장미 가시에 찔린 피가 정강이를 적셔서 구순기에 접어든 나는
으앙~
울음보를 터트릴 구실을 겨우 얻었다, 오,
장밋빛 인생 

  

 

김영찬 시인,

 

충남 연기 출생.

외국어대 프랑스語과 졸업.

2002년 계간『문학마당』과 정신과표현』에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2007년,『투투섬에 안 간 이유』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