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주최) 입체시공연

바냔나무 2009. 9. 4. 13:22

국립중앙박물관(주최) 입체시공연


 

포스터제작:국립중앙박물관 / 포스터 그림제공: 화가 김샨(김서연) 그림(구름을 탓하는 여류시인) 

가을

          목마

                            타고오고…,


 깊어가는 가을, 노을을 바라보면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그림자가

창가에 어른거립니다.

 목마는 세월의 방울소리를 남기고 가을 속으로 사라져가고

 달빛 발자국처럼 피어난 꽃들은

잊혀진 이름을

호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가고/옛날은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그 눈동자 입술>은 영원히

내 가슴에 설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주관 입체시 퍼포먼스

공연장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소강당, 2009.9.26(토) 4:10-5:30pm

*시공연(김영찬 연출): 정재분/강영은/박완호/윤영숙, 김영찬 시인 등 

*관중과 함께 시공연: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 및 ‘세월이 가면’

*춤사위: 김리영 (시인/무용가)

*바이올린 연주: 반선경 violinist (한예종 음악석사)

 

 

공연 순서

1. 시인 박인환 소개 및 시공연 

1926년 강원도 인제 출생.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평양의전 중퇴.

1946년 시 〈거리〉로 등단. 1949년 '후반기'도인 결성. 1949년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발간. 1955년 《박인환 시선집》을 간행. 1956년 심장마비로 별세. 1976년 유고시집 《목마와 숙녀》 간행.

박인환 시 2편

(1) ‘세월이 가면 ’: 시공연 서막에 관객과 함께 낭송/합창하며 시작.

    (김진섭 곡/박인희 노래/강영은 시인이 선창)

(2) ‘목마와 숙녀’ : 무대 위에 준비한 시(광목에 전문을 필사하여 준비)

    5명의 시인이 진행하며 관중과 함께 읽으며 한 연씩 감상


세월이 가면/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낙엽은 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목마와 숙녀/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2. 공연 시인(5명) 창작시 및 프로필 


국보제98호 청자상감모란문항

모란 항아리/윤영숙





친정집 뒤란에 진 꽃

모란문항으로 다시 피어났다

장독대에 어리는 꽃그늘

젊은 엄마 속눈썹 가늘게 떨린다

봄-봄 

모란꽃 피고 지고,

빈항아리에 소복이 담긴 하늘

새 한 마리 그려 넣고

고요를 흩트렸다


벙그레 입 벌린 청자항아리

내 시선 거기 멈춘다

사방으로 다보록한 꽃술

바람 한 점 없고

모란꽃, 

꽃부리 흔들린다

툭툭 터지는 속살

산통 겪은 모란 곁에서

흠뻑, 내가 젖는다




라일락 향기 씹으며/윤 영 숙




마블 욕조 속 온몸이 말초신경을 불러 박하 향 터뜨릴 때


콧잔등 찡그린 눈가로 삐에로 같은 눈웃음 매달릴 때


유리창으로 또박또박 떨어지는 빗방울이 지나갈 때


문득,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안으로 방 한 칸 전세 낼 때


감청 빛 산그늘 내려 창문마다 불빛 흘려놓을 때


깊이 모르는 강 높이 모를 낮달이 겁 없이 뛰어내려 쪽배를 뒤집어 놓을 때


혀끝이 닿기 전 나의 키스는 아이스크림처럼 차가워진다


파도가 씻은 몽돌이 등을 타고 엉덩이에 미끄러질 때


라일락 지는 밤 아무도 몰래 앨범 속에 떨어뜨린 눈물 한 방울


바람도 없는데 꽃잎이 하르르르 발치로 모여들고


아아- 비의를 머금고 있는 여인의 긴 목선, 등신거울에 비치는 바로 그 순간,

 

 



*윤영숙 시인: 충남 홍성 출생. 2007년 계간 <애지>로 등단. 한국시인협회 간사

email: sook01220@hanmail.net 손전화:010-6351-0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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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女子에게서 사랑을 배웠다/박 완 호



1.

어릴 적 마을 복판에 서 있던 느티나무 여자에게도 애인이 있었다네 동리 어귀에 장승처럼 버티고 선 허리 굵은 느티나무가 그녀의 남정네였지 아이들 서넛이 손을 맞잡고 둘러서야 겨우 안을 수 있던 그의 허리에서는 매일 눈물처럼 樹液이 넘쳐흘렀네 나는 남 몰래 한 줌씩의 사랑을 퍼다 그녀에게 전해 주었네

 

그녀는 우주로 통하는 자궁을 가졌네 한 손에 연애가 담긴 편지를 들고 나무 여자의 몸 안으로 들어가면 그 위로 항아리 만한 하늘이 늘 파랗게 웃고 있었지 그녀가 집집의 사람들을 다 쓰다듬고도 남을 이파리들을 흔들며 멀리 있는 애인에게 그리움을 날리는 것도 나는 한 눈에 볼 수 있었네

 

톱날이 연인의 그 굵던 허리를 잘라 버리고 아무리 까치발을 해도 그의 머리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는 우리는 행복했네 아아, 추억의 한 자락이라도 잃지 않으려는 듯 그녀가 제 안으로 향하는 문의 빗장을 채우기 전까지는  


2.

느티나무에게서 나는 사랑을 배웠다

어린 사랑의 전령이었던 나는

고여 있는 나무의 마음을 퍼다

그의 애인에게 날라주었지

제 안의 그리움을 퍼내면 퍼낼수록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을 안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네

사랑하다

사랑하다

제 한 몸 뿌리째 없앰으로

비로소 하나가 되는

느티나무의 사랑,

느티나무는 내 사랑의 선생이었네

3.

사내의 마음을 다 갖고 나서야

여자는 몸의 빗장을 건다

그녀가 은밀한 자궁의 자물쇠를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은 완성된다

천 년이 지나도 마르지 않을

그리움의 샘이 만들어진다


소멸의 문턱을 넘고 나서야

눈부시게 제 몸을 일으키는

절정의 그리움


느티나무 여자에게서 나는 그것을 배웠다




들꽃 여관에 가고 싶다/박 완 호


 


들꽃 여관에 가 묵고 싶다


언젠가 너와 함께 들른 적 있는, 바람의 입술을 가진 사내와 붉은 꽃의 혀를 지닌 여자가 말 한 마디 없이도 서로의 속을 읽어 내던 그 방이 아직 있을지 몰라, 달빛이 문을 두드리는 창가에 앉아 너는 시집의 책장을 넘기리, 삼월의 은행잎 같은 손으로 내 중심을 만지리, 그 곁에서 나는 너의 숨결 위에 달콤하게 바람의 음표를 얹으리, 거기서 두 영혼의 안팎을 넘나드는 언어의 향연을 펼치리, 네가 넘기는 책갈피 사이에서 작고 하얀 나비들이 날아오르면 그들의 날개에 시를 새겨 하늘로 날려 보내리, 아침에 눈뜨면 그대 보이지 않아도 결코 서럽지 않으리


소멸의 하루를 위하여, 천천히 신발의 끈을 매고 처음부터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나의 전부를 남겨 두고 떠나온 그 방, 나 오늘 들꽃 여관에 가 다시 그 방에 들고 싶다



*박완호 시인 : 충북 진천 출생.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아내의 문신』 등이 있음. 한국시인협회 회원.

email: parkwanho@hanmail.net 손전화: 010-2201-6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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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94호, 청자소문과형병

꽃 궁전에 들다/강영은

            



참외 넝쿨에 레이백 스핀을 건 한 송이 꽃,

굽 높은 구두 받쳐 신은 잘록한 허리에

외주름치마 둘러 입었다

긴 목덜미에는 활짝 핀 참외 꽃잎 여덟 장

향긋한 속내 드러내는데


호접몽 꾸는 밤이면 너는 나비처럼 날아 들거라

꽃 왕조의 궁전이니

온갖 꽃모가지 꺾어 네 무릎에 놓아 주마


누대의 하늘과 입 맞춰 온 내 본성은

죽음의 무도회를 지난 꽃,

활활 타는 불길로 중심을 비운 가장 아리따운

꽃병이지 않느냐


덥썩, 안지 말고 사쁜 接 하거라, 


빙렬 없는 사랑도 부서지면 시퍼런 칼날 겨누는

조각달  될 뿐이니

그리운 고려 하늘 흠집나지 않겠느냐




오래 남는 눈/강영은



 뒤꼍이 없었다면, 돌담을 뛰어넘는 사춘기가 없었으리라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쓸어안은 채 쪼그리고 앉아 우는 어린 내가 없었으리라 맵찬 종아리로 서성이는 그 소리를 붙들어 맬 뒷담이 없었으리라 어린 시누대, 싸락싸락 눈발 듣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리라 눈꽃 피어내는 대나무처럼 소리 없이 눈 뜨는 푸른 밤이 없었으리라 아마도 나는 그늘을 갖지 못했으리라 한 남자의 뒤꼍이 되는 서늘하고 깊은 그늘까지 사랑하지 못했으리라 제 몸의 어둠을 미는 저녁의 뒷모습을 알지 못했으리라 봄이 와도 녹지 않는 첫사랑처럼 오래 남는 눈을 알지 못했으리라 내 마음 속 뒤꼍은 더욱 알지 못했으리라.



강영은 시인:

제주출생. 2000년 계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녹색비단구렁이” 등.

현재, 한국시인협회 간사, 서울 산업대 출강

email: kiroro1956@naver.com  손전화: 019-254-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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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93호 백자철화포도문호

백자철화포도문호/정재분 






일어나라, 일어나라

무명의 시간에 감금된 백토여

흩어지려는 속성을

물로 다독여서

그녀의 어깨와 가슴 허리를 어루만지던

도공의 손끝에서 또 하나의
그녀가 태어나네


연습은 없어라

붉은 녹을 붓에 찍어

일필휘지로 포도넝쿨을 따라가다가

농담을 잊어버리고

호방함으로 살아났어라

소문으로 들어온 원숭이는

포도밭이 낯설어도,


가마에 들어찬 빈 울음부터 꺼내네

나를 찾아 가는 길은

바람의 호기심이 뜸해지고 나서야

불의 혓바닥이 수굿해지고 나서야

하얀 속살이 더욱 하얘지고

붉은 괴리가 치명상을 입어

본디에 가닿은 결정을


눈빛으로 쓰다듬어라



 

북문 가는 길


                                   정재분





연무대 뒤뜰

수령이 사오백은 조이 됨직한 느티나무

그늘아래 누워

올려다본 하늘엔 가을이 가득하고

풀벌레 합창에 벌어지는 밤송이


산다는 것은 좋은 사람과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바람의 갈기가 맨살을 휘돌 때에

나는 한 마리 새가 되고

너는 내일을 예언하고


남한산성 북문 가는 모롱이에서

저 혼자 피어난 풀꽃에게

하염없이 마음 붙잡히고

아무도 모르게 꽃 피워 열매 맺은

으름에게 넝쿨손을 뻗어보는


산다는 것은

가을로 익은 그리움이 햇살처럼 쏟아질 때

문 잠긴 북문 성벽 아래에서

때로는 야생의 노루처럼 뛰다가

귀고리 한 쪽을 잃어버리는


 

*정재분 시인:

대구 출생. 2005년 계간 <시안>으로 등단. 한국시인협회 간사.

email : chrom21@hanmail.net 전화: 010-5314-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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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96호 청자귀형수병(靑磁龜形水甁)

꽃이 바람의 등을 밀다/김영찬




헤이~ 미련 곰탱아,

치맛자락 파고든 우직한 촌사내의 옹고집처럼

속살 고운 연꽃 위에 우격다짐

무대포로 짓눌러 앉아

천년학을 기다릴 태세로구나


몽키스파나로 잘못 조인 세월의 못대가리마냥

뭉뚝한 얼굴에

목주름 심한 턱주아리는 차라리 믿음직스럽다마는

무식한 무쇠 솥 잔등이라니


그런데


천년학이 날아와 너를 안고 솟구쳐 날아오를

그날까지

알 아닌 알, 무정란인 세월을 포란,

어정쩡한 시간일랑 아예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발가락 하나 꼼지락거림 없이

웅크려 긴장하고 있구나


에효~ 이런 미련둥이 거북아,

세상천지 다 놔두고 하필 연잎에 품은 알들

사바세계에 부화돼 연꽃 흐트러지게 피운 뒤 납총알처럼

연밥 터트릴 태세라면 내려와야지,

어서 내려서라니까

꽃이 바람의 등을 밀어


1cm씩 1mm씩 하여간 곰탱이 네 얼굴 어루만지는 달빛

고요히 감응하고 있구나!




투투섬에 안 간 이유/김영찬





나 투투섬에 안 간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투투섬 망가로브 숲에 일렁이는 바람

거기서 후투티 어린 새의 울음소릴 못 들은 걸

후회하지 않아요

처녀애들은 해변에서 하이힐을 벗어던지겠죠

물살 거센 파도에 뛰어들어 미장원에서 만진 머리를

풀어 제킨다죠

수평선을 끌어당긴 비키니 수영복 끈은

자꾸만 풀어져

슴새들의 공짜 장난감이 된다는

투투섬에


나 그 섬으로 가는 티켓을 반환해버린 걸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쓰리 당한 핸드백처럼 볼품없이 행인들 틈에 섞이다가

보도블록에 넘어진 사람 부축한 일 없지만

옛날 종로서적 해묵은 책먼지 생각이 떠올라서

풍선껌이나 사서 씹죠


―나 투투섬에 안 간 것 정말 잘한 결정이죠


발자국 수북이 쌓인 안국역 지나 박인환을 꼭 만날

예정은 아니더라도

마음속에 *마리서사 헌책방이나 하나 차리고

멀뚱멀뚱 토요일의 난간에 기대어

낡디낡은 태엽에 감긴 시간을 풀어주기도 하며

후투티 둥지 안에 투숙할까

그런 계획이죠




**마리서사:

시인 오장환이 운영하던 책방을 박인환이 인수, 새롭게 운영하던 서점.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산실인 마리서사는 당대의 문인들이 응접실처럼 드나들던 곳. 서점 이름은 안자이 후유에(安船衛)라는 일본시인의 시집 "군함마리(軍艦茉莉)"에서 따왔거나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이기도 한)의 이름에서 빌려왔다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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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 시인:

충남 연기출생. 2003년 문예지 <정신과표현>에서 작품활동.

시집,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 등. 한국시인협회 간사

email: tammy3m@hanmail.net  손전화: 010-5240-4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