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두 대의 피아노와 당나귀

바냔나무 2009. 4. 9. 01:58

 

 

 

두 대의 피아노와 당나귀


                                    -김영찬


 



두 대의 피아노와 한 마리 당나귀가 있다

당나귀는 귀가 너무 커서 타악기소리를 싫어한다
그러나 과도하지 않게 언제나

피아노 건반 위를 뚜벅뚜벅 걷는,

걸어가면서
산책 중 명상에 잠기는 습관이 있다

당나귀 발굽을 닮은 내 손마디엔 두 대의 피아노
――한 대는 피아니시모 또 한 대는, 

――피아노포르테
흰 포말 부서지는 해안에서

 

안단테와 비바체 그리고 하얀 건반을 두드리고 지나가는

광풍들
해안선 저쪽에는
반라의 애인들을 그늘로 가려주는

검은 건반의 숲도 있다

두 대의 피아노와

한 마리 당나귀라고 그랬지, 나는 썼지
두 대의 당나귀와 한 마리 피아노라고
고쳐 적으련다

 


한 마리의 검은 피아노가 두 대의 당나귀 갈기와
말총꼬리를 붙잡고

속도를 내겠지
그러면
고리타분하기로 유명한 저 지구의 말발굽인 일상이

너무 빨리 닳아서 한쪽으로 기우뚱 기울겠지

그러므로 과도 하지 않게

‘알레그로 마 농 트로포’로 가자고 당나귀 귀에 대고

속삭여야 겠다
사랑은 allegro ma non troppo, 였다는 걸

피아노가 알아차릴 때까지

 

 


계간『애지』200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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