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대낄라*는 43˚

바냔나무 2009. 6. 10. 00:50
  

 

 

  

데낄라*는 43˚

 

 

 

 

김영찬

 

 

 

 

 

 

 

멕시코, 멕시코 숲에 갔을 때

유칼리나무 아래 기다리기로 한 여인은 춤을 추지 않았다.

부챗살 환한 시간 터트려

육두구 열매 진한 향기 노을 풀어놨지만

 

유칼리 그늘 푸른 밤을

치마폭에 감싸기로 한 여인은 끝내 춤 안 추고

옷 갈아입지 않았다.

 

 

함부로 쏟아지는 달빛 탓이라는 변명을 듣고는 싶은데

 

 

그날따라 밤하늘은 모든 별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꿈속마다 눈 아프고

어둠에 익숙한 새들만 아무 숲으로나 솟구쳐 날아올라

층적운 높은 둥지를 튼 멕시코,

 

멕시코의 모든 밤이 선인장 뿌리마다 깃들어

독한 술을 빚는 밤

 

 

발코니 창가에 나온 여인은 검은 머리단만 땋아 내릴 뿐,

곤드레만드레~ 술독에 빠진 나는

여인의 머릿단을 잡고 달빛 층계를 오르다가

휘청~ 쓰러졌는데

그때마다

 

유리병 속에서 나온 맨몸의 여인은

이름 모를 항구의 흐린 불빛 속에 나를 눕혀

아찔한 입술 풀어주었지

 

 

 

                    계간 《시로여는세상》 2009년 여름호

 

 

 

 

*멕시코 하리스코(Jalisco) 주의 데낄라(Tequila) 지방에 가면 용설란을 발효시켜 만든

  선인장 술냄새가 온세상에 진동, 그 때문에 귀가 아프다. 

 

 

 

------------------------------------------------------------------------------------------------------  

●데낄라를 제대로 마시자면, 

 

-slammer shot:

데낄라를 반만 채운 술잔에 소다수를 채운 다음 냅킨을 덮고 테이블 위에 술잔을 내리치면 

글라스에 거품이 일어난다. 이 때 한 손으로 삐딱하게 잔을 들고 신경질 내 듯 단번에 원 샷, 

마셔버리는 방법. 일명, 터프 가이 샷.

 

 

-Shooter shot:

엄지손가락에 레몬즙을 바른 다음 거기에 소금을 뿌린다. 레몬즙 + 소금의 짠 맛이 벤 손가락을

핥으며 마시는 방법.

좀스러워 쪼잔해보이지만 핀들핀들 취하기에 딱 좋은 주법이다.

애인의 손가락에 묻은 레몬즙을 핥을 때도 있다.

 

 

-Romantic Body shot:

파트너의 신체 은밀한 곳을 탐색하며 거기에 레몬과 소금을 은밀히 바른 뒤 거길 혀로 핥으며 

홀짝이는 주법.

짭조롬하고 시큼한 레몬과 데낄라향이 뒤섞여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몽롱한 취중에 전개될 낭만과 섹슈얼러티를 상상해보시라.

  

 

*<데낄라를 멋있게 마시는 법>은 당초 이 시의 말미에 붙였던 <주>로써 시의 일부나 다름없다.

 

 

'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세상》*의 책  (0) 2009.08.20
구름의 헛기침   (0) 2009.08.20
두 대의 피아노와 당나귀  (0) 2009.04.09
벚나무 위 내 집   (0) 2009.04.02
엘*의 나라에서   (0) 2009.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