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평론가 남기택 김영찬 시집 서평

바냔나무 2008. 4. 14. 16:04

 

 

 

■ 평론가 남기택 서평


불멸을 그리는 방식

―김영찬 시집,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 시안 황금알 刊.


                                                          남기택



  1.


  시인 이상을 전후한 아방가르드적 전통은 한국 문학장의 중요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자연발생적으로 지속해온 그 흐름은 한국 문학장의 구조적 토대, 즉 천민 자본과 중앙집중적 문화라는 기형적 시스템 위에서 문학적 자유의 존재를 증거하는 형상이기도 하다. 2000년대 시단을 풍미하고 있는 젊은 실험시들의 초발적 상상력은 사실 전위와 해체라는 키워드로 진단된 문학적 전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김영찬 시는 이와 같은 진보적 상상력의 계보를 자처하며 오랜 발생의 시간을 기다려 온 듯하다.

  대개의 늦깎이 경우처럼 김영찬 시는 완고한 자의식과 어법을 통해 주조되고 있다. 스스로 강조하는바 “의미를 넘어선 곳에 의미가 있다”(「시작노트」)는 확신처럼 초현실적 작시법에 충실한 시편들은 ‘의미의 논리’를 가볍게 배반하며 무의미의 진경을 펼친다. 단속 없는 초의미를 향한 시도는 자신에 대한 궁극적 믿음(“역사상 가장 아름답게 태어난 나는/서사성 짙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밤잠을 거른다”, 「쇠똥구리 아젠다」) 속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김영찬 시집에 대한 몇 줄의 글은 사족이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시어가 파생하는 날것의 의미를 그 자체로 감각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집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접근법이 아닐까 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제로부터 강조되고 시집을 관류하는 ‘불멸’의 이미지는 김영찬의 추상 세계에 접근하는 하나의 통로일 수 있겠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는 미장센(mise en scene)을 모르고 미장생으로 산다. 모르는 건 모르는 것, 나는 영화제작자가 아니므로.


  미장생(mise en saint); 미장(美帳), 미장(美裝), 미장(美粧), 미장(美匠) 미쟁이의 미장술, 미장한 생.

  어떤 간판부터 손질해야 할까. 기왕이면 미장(美粧) 잘 한 나의 생(生), 미장생(美粧生)이 낫겠다. 잠깐, 잠깐만! 미(美)를 한 글자씩 독립시켜 장생(長生), 미 장생(美 長生)이라 써넣어도 될 법. 미장 생(美粧 生), 미 장생(美 長生)은 오늘 밤과 내일 밤의 내 모든 화두다. 밤을 새워 빠리 시내 뒷골목을 뺑뺑 나돌다보면 나의 생은 생과일주스만 못하고 연옥의 감로주처럼 뒷맛 떨떠름한 맛, 미장생!


  돈독한 생은 아니지만, 뤼싹 쌩떼밀리옹 포도주에 젖은 나의 생은 그런대로 붉다.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 #11-2―미장생, 미장센(mise en saint)」 부분



  이 작품은 “달콤하고 돈독한 생은 아니지만”이라는 독립된 연으로부터 출발하여 화자의 삶의 배경에 대한 사념을 거쳐 위와 같이 종결된다. 수미상응의 방식으로 생을 긍정하는 방식이 ‘불멸’의 감각 기층에 놓여 있다. 여기서 ‘미장센(mise en scène)’이라는 개념의 축자적 의미, 즉 연극 무대나 영화의 스크린 연출이라는 통념은 개별적 삶에 대한 세련으로 전유된다. 말장난과 같은 ‘미장센’의 변주는 결국 “그런대로 붉”은 “나의 생”을 미장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힐끗 쳐다보”는 불멸의 감각이란 이처럼 생에 대한 긍정의 순간적 통찰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지극한 자의식이 개념을 전유하여 개별(‘미장 생’) 속에 담긴 보편(‘미 장생’)을 인식하는 순간이요 순간에 집중된 영원의 감각과도 같다.

  그리하여 김영찬 시집에서 시공은 순간의 영원성을 드러내는 데 집중되고 있다. 일상이 “어제의 시뮬라크르, 복사본인/아침”(「페가수스 별자리를 스치다」)과 같은 식으로 인식된다. 시공간이라는 존재의 조건은 이미 자기동일성을 상실한 채이다. 하지만 들뢰즈의 개념이 묘파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 아침은 어제 아침과 다르다. 그것은 집중된 감각을 통하여 비로소 지속적인 불멸의 순간을 드러내는 역동적 ‘사건’이다. 이번 시집에서 복제물인 존재와 시공에 대한 인식은 “절망의 피사체, 원본 없는 시뮬라크르”(「물고기는 물고기의 밥」)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물고기가 물에서 풀려나와 허공에 갇히는” 순간으로서 “물고기의 밤”을 표현하고 있다. 개방과 단절, 영원과 순간이 공존하는 존재의 장으로서 시뮬라르크에 대한 인식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멸의 순간을 드러내는 또 다른 매제는 ‘아이스크림’(「아이스크림에 거는 희망」,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다」, 「첫눈 오는 날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공장 공장장」)이다. 그것은 유년의 의식을 우선 환기한다. ‘어린이기’는 의식과 몸의 미결정성을 상징한다. 또한 쉽게 녹아버리는 속성이 순간성의 감각과 잘 어울린다. 달콤하지만 일순간 사라지는 향유의 질감이 아이스크림과 불멸 사이에 놓인다.



벚꽃이 지는 속도는

초속 1mm


내 사랑 아이스크림이 혀를 녹이는 기간은

영겁에의 억류


무한대 ∽에 닿아

불멸(不滅)을 스칠 수 있겠다


―「아이스크림에 거는 희망」 전문



  시집 초두에 배치된 이 작품은 불멸과 아이스크림의 관계를 설정하며 김영찬 시집의 여정을 전조하고 있다. 여기서 “벚꽃이 지는” 찰나와 등치되는 “아이스크림이 혀를 녹이는” 순간이 “영겁에의 억류”라고 명시된다. “내 사랑 아이스크림”이라는 존재의 시간이기도 한 그것이 무한대에 닿아 “불멸을 스칠 수 있겠다”고 한다. 이 작품의 단순한 구조는 회복불가한 상상계의 순간―결핍 없는 모성충족의 세계―을 의식의 전면으로 끌어올리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폭력적 큰타자의 시간, 즉 상징계의 질서―법적 혹은 기호적 현실―를 비웃으며 영원한 실재와의 조우를 기록하려는 것이다. 순간의 향유에 영원의 감각이 있다. 그 순간은 모든 것이 거꾸로 선, 그러나 적나라한 욕망의 실체인 ‘호텔디자이어’(「호텔디자이어의 추억」)의 감각이기도 할 것이다. 생물학적 욕구(demand)와 사회학적 요구(need)가 일치하는, 결여가 사라진 욕망(desire)의 표상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그는 에어쇼 보러 가고 나는

우체국에 가고


―이봐, 행선지가 도대체 어디냐고?


  구름 한 다발 꽃잎 한 장씩 침 발라 붙인

달랑 우표 한 장 뿐


  수취인 불명확, 내용 불특정 길 잃기 딱 좋은

조건은 그렇다 치고

반송 돼 되돌아올 보장 전무하지만

나, 당당히

우체국에 가고


  우편번호 일일이 확인하는 동안

친구이자 연인이자 동반자인 그는 고개 꺾어

에어쇼 보고

―「무인도 우체국」 부분



  위 시는 이번 시집에서 욕망의 구조를 비교적 ‘온전하게’ 드러낸 작품에 해당된다. 온전함이란 ‘내’ 욕망의 실체와 구조를 직접적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욕망의 실체는 에어쇼를 보러 가는 ‘그’와 무인도 우체국을 찾는 ‘나’의 대립으로 극화된다. 여기서 ‘그’는 “친구이자 연인이자 동반자”이다. 하지만 “운명의 쌍곡선을 따라 창공을” 나는 ‘그’와 “무인도 우체국을 찾아가”는 ‘나’는 행위의 공감대를 전혀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행선지를 알지 못하는 각자의 욕망만이 두드러진다. 차이보다도, ‘당당한’ 나의 무인도 우체국행이 전경화된다. “무인도 우체국”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아이러니다. 이는 곧 행위(텍스트 혹은 작시 과정)의 의미, 기호(시어의 전언)의 범주를 넘어서려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명확한 수취인과 특정한 메시지, 보장된 반송 등은 자연스럽게 행위의 목적으로부터 멀어진다. 분행의 형식을 무시하는 파격도 무의식 자체의 현상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 작품은 김영찬 시의 욕망과 형식을 구조화하는 일종의 시론시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에 따를 때 시작(詩作)은 소통과 장르를 선험적으로 부정하는 구도에서 비롯되며, 그 자체로 완전하고, 찰나의 불멸을 기록하는 행위가 된다.



  3.


  김영찬 시집에서 이국취향(「아라공의 별」, 「딴다에서의 일몰」, 「낯선 시간 위에 눕다」, 「푼타아레나스의 철새」, 「달맞이꽃에 대한 나쁜 기억」 등) 역시 환상성을 부여하는 주요한 장치이다. 그의 작품에는 국가나 민족, 언어의 정체가 모호하다. 초국가적 상상력으로 표현의 바다를 유유히 유영하고 있다. 삶의 이력에서 비롯되는 이국적 여정은 이번 시집에서 일종의 시적 큰타자로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각종 기호의 사용(「추억의 문 밖에 선 등불」, 「동심원 ♤하나」, 「안식년의 구름마차」, 「태백선 밤기차를 타고」 등)은 무의미를 기표화하는 전형적 방식이다. 기호의 전유는 파격 속의 질서와 언어의 물성을 향하는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

  이국취향의 낭만적 세계는 변화무쌍하여 그 흐름을 예상하기가 어렵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불멸에의 꿈은 “누군가가 굳이 흔들어 깨우지 않아도/내 의식은/밥 잘 먹고 꿈 잘 꾸고 마른 침 삼키며/일찍 일어나 거리를 걷네”(「결론에 도달하자면」)에서처럼 확고하고 자동발생적이다. 하지만 모든 아방가르드의 운명이 그러하듯, 행연의 방식조차 무시한 파격과 교란된 이미지들은 상당한 미적, 감상적 거리를 형성하는 게 사실이다. 무한한 불멸의 꿈이 있되 같은 이유로 여전히 미완성이고, 시어의 물성을 추구하는 선험적 의식만으로 시적 체험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못한다. 불멸의 인식소를 비끼는 자폐적 유희의 공존 역시 과잉된 의도의 몫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식대로 “팝콘나라 밀항”(「팝콘나라 밀항자들을 위하여」)을 통한 환상의 여정은 비로소 출발점에 선 꼴이다. 부푼 기대와 더불어 예정된 풍파의 길이기도 하다. □



시전문지 계간 『시선』 200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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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택: 시인/평론가. 대전출생.

 1999년 『작가마당』,  2007년 『현대시』 신인상(평론)으로 등단.

 평론집, 『평상을 향한 경어』 및 『악한 광장에 서다』 등. 현 강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