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가지 못한 먼 길 /김영찬

바냔나무 2010. 4. 2. 19:46

 

 

 

                     가지 못한 먼 길

 

                                                      김영찬





이유불문하고 겨울은 또 한 차례 오지

그럴 수밖에

     남자와 여자가 맨살 부딪치면 웃고

                          웃고 울다가 얼굴 찡그린 막간에

     어린애는 태어나고

그렇게 태어난 애들은 너무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지, 그렇잖고

     누군가가 주문하지 않아도

                         꼬리표를 단 계절은 월반하듯 밀려오고


그렇게 조급한 한여름의 배롱나무 늙은 꽃 그늘 아래에서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울고

쉴 만큼 쉬다가

꼬리 쳐들고 날아갈 곳 정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야반도주하듯 어디로?

     —어랍쇼, 여긴 아예 도시 전체가

텅 비어 있네!


묻거나 따진 적 결코 많지 않지만

     귀에 아픈 얘기 좀 들어줄 친구 하나 없는 까닭에

     죽은 사람 이름이 자주 호명되고

     그렇게 눈썹 시린 연인들은 오그라든 나뭇잎만 들추지


이유 불문, 인연만은 끊지 않으려고 발버둥친 탓에

기적처럼 진짜배기 봄이 오고

    봄이 와서

                       꽃은 한 차례 더 피어 씨방 여물릴 거라는데

그럴 수밖에

외로운 사람들은 더욱 더 멀리 멀리 떠나


신발에 묻은 흙을 털고 오고,

털고 오고

 

 

 

*계간 <리토피아> 신작시 2010.3월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