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팝콘나라 밀항자들을 위하여

바냔나무 2007. 7. 22. 02:36
팝콘나라 밀항자들을 위하여




팝콘나라 밀항자들을 위하여

                                         -김영찬




팝콘을 튀길 때는
수다쟁이 햇빛이 극성이죠, 당연히 투덜거리며
한쪽으로 쏠리는 반사광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소도시로 몰려오는 엽서들처럼
호접몽은 쌓이죠
잘 살펴봐요, 태생부터 심통인 저 조각구름의
심술궂은 행태를요
팝콘의 눈알을 일일이 발라내어
우~짱짱 행인들의 이마와 콧등에 마구잡이로
쏘아대는군요
확대된 눈으로 그래서 참 어쩌라는 거죠?

처음엔 급조한 순애보를 접어 날리는
종이비행기 놀인 줄로 착각했죠
그러다가 속사포를 쏘아대듯 꽈당~ 쾅쾅쾅 팝콘이 터져
느린 오후를 뒤흔듭니다
딴에는 사보타지 중인 세상을 향한
엄중한 경고,
공갈 협박쯤 치룬 셈이죠
어쨌든 가로수들이 선잠을 깨고 게으른 우체부가
우편행랑을 몽땅 뒤집어 편지뭉치를 쏟아 붓죠
저런, 그 바람에 당신의 침침한 눈알이
빠져나왔다고요?
팝콘 튀기는 날엔
휘날리는 머리칼도 조심해야겠어요

그렇지만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튀겨도 튀겨도 상처 남지 않는 팝콘의 나라로 밀항하고 싶다는
지원자가 끊임없이 늘어나는 추세는
무얼 반증합니까
밉지 않은 햇볕 한 줄금, 나서기 좋아하는 구름 한 포대,
주책맞은 초저녁 빗방울들의 소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콧구멍 찌르는 바람 한 켤레 데리고
우리 떠납시다, 팝콘의 나라
속 터지는 포신 속으로!


*계간 『시평』2006년 11월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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