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배평

문화평론가 류가미의 환상여행

바냔나무 2013. 2. 6. 15:44

문화평론가 류가미의 환상여행(16회)

 

 

기독교 -그노시스 대 크레도

 

환상여행을 연재하면서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근본주의의 성향이 강한 일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비교종교학적으로 바라보는 저의 시선을 좋게 보지 않을 테니까요.

기독교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에 반발해 192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던 프로테스탄트 신앙운동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성서가 전혀 오류가 없는 신의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에 성서의 모든 부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성서에 가장 충실한 복음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순복음교회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화론을 부정하고 성서대로 하느님이 칠 일만에 천지를 창조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세계의 종말과 예수의 재림을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가 되면서 근본주의 운동은 힘을 잃습니다. 그러다 1950년 매카시즘이라는 극단적인 반공주의에 힘을 입고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다 다시 소강상태에 빠지고 부시와 함께 부활하지요.

대선 때마다 부시를 열렬히 지지해주는 기독교인들이 바로 이들 근본주의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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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대의 신학자들은 근본주의를 좋게 봐주어서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하느님이 칠일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성서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집니다.

고고학적 발굴과 문헌 연구로 고대 근동의 역사가 밝혀질수록 성서가 꼭 이스라엘의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구약뿐만 아니라 그보다 최근 기록인 신약도 마찬가지 입니다. (최근이라고 해도 2000년 전의 일이지만.)

기독교를 창시한 예수는 단 한 줄도 직접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그의 제자들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에 대한 기록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어느 정도냐 하면 4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행적들마저 차이가 있습니다. 그 한 예로, 마테오 복음서와 루가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출생시기가 서로 다릅니다.

마테오 복음서는 예수가 헤로데 왕 시절에 태어나 박해를 받았다고 전하고 루가 복음서는 예수가 시리아의 총독 퀴리니우스가 호구 조사할 때 태어났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헤로데 왕은 기원전 4년에 죽었고 퀴리니우스 총독이 호구 조사를 실시한 것은 기원후 6년의 일입니다.

이러한 사소한 불일치 때문에, 성서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성서는 인류의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성서가 전지전능한 신이 쓴 책이 아니라 인간이 쓴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무조건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에 비추어 성서를 읽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원후 2세기 경에는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Credo quia absurdum )’라는 교부 테르툴리아누스(160~220)의 주장에 먹혔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이성과 신앙을 화해시켜야 합니다.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했던 테르툴리아누스

사실 기독교 신학에서 신앙이냐 이성이냐 하는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닙니다. 사실 이 문제는 기독교가 시작될 무렵부터 대두되었습니다. 잠시 초대 교회의 사정을 살펴보죠.

예수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은 팔레스타인 지방을 방랑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합니다. 그 덕분에 차츰 예수의 가르침은 아나톨리아 (지금의 터키)와 그리스 본토 그리고 로마에 사는 유대인 집단에 퍼집니다.

 

 기독교 선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로입니다. 그런데 기원후 2세기 전후로 기독교 선교의 대상이 유대인이 아닌 다른 민족으로 바뀝니다. 그렇게 됨에 따라, 유대의 종교적 전통과 헬레니즘 문화가 부딪히게 됩니다.

 

▶ 기독교를 전파한 사도 바울로. mariannedorman.homestead.com

초대 교회의 가장 큰 숙제는 ‘유태교의 전통과 헬레니즘 문화를 어떻게 통합시키냐’ 하는 것이 었습니다. 사실 유대교의 전통은 헬레니즘 문화의 바탕인 그리스 철학과 무척 다릅니다.

그리스 철학은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며 인간이 자신의 본성에 따라 행동할 때 자신의 덕성 (아레테) 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대교에서는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봅니다. 인간이 원죄라는 이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신의 구원을 통해서 입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해 보편적인 진리를 계시합니다. 반면 그리스 철학에서 보편적 진리는 인간의 이성으로 탐구할 어떤 것입니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예언자를 통해 계시된 진리를 믿고 따를 것을 요구하지만 그리스 철학의 전통은 자신의 이성을 가지고 보편적 진리를 깨우칠 것을 요구합니다. 유대교의 전통은 계시된 진리에 조건 없는 믿음(Credo)을 요구하고 그리스 철학의 전통은 이성을 통해 스스로 보편적 진리를 인식(Gnosis)할 것을 요구합니다.

 

▶ 신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는 그노시스.

www.gnosissat.4t.com

초대 교회 안에는 신에 대한 믿음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과 신에 대한 인식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신을 믿는 것보다 신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그노시스파’ 라고 합니다.

그런데 3세기가 되면서 그노시스파는 이단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노시스파가 이단으로 몰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원리(하느님)가 훼손되지 않고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는 육체(예수) 속으로 내려올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은 아버지인 하느님과 아들인 예수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아들인 예수는 하느님 아버지 밑에 있는 하위의 존재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훗날 ‘아리우스파’ 에 영향을 미칩니다.

로마는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 (네르바, 트리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가 다스리는 96년부터 180년까지 크게 번성합니다. 사실 이때가 로마의 최고 전성기였죠.

그러나 5현제가 끝나는 2세기 말부터 로마는 차츰 쇠퇴하게 시작합니다. 밖으로는 세계 시민주의를 표방하면서 안으로 개인의 덕성(아레테)을 수련하고자 했던 헬레니즘 문화는 3세기가 되자 힘의 우월을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와 자기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향락주의로 타락합니다. 어떻게 보면 헬레니즘 문화가 그 한계점에 도달한 셈이죠.

기독교가 3세기 급성장했다는 것은 그저 우연만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헬레니즘이 채워주지 못했던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존재는 말이죠. 역설을 통해서만 설명됩니다. 우리는 낮 동안 밝은 의식을 가지고 현실세계 속에 살지만 밤이 되면 의식을 잃고 무의식 속에서 올라온 축축한 꿈속을 헤맵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인 동시에 비이성적인 동물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의식의 밝은 빛만큼 무의식의 어둠을 필요로 합니다. 인간의 밝은 의식 (이것을 이성이라고 하죠)은 과학과 철학을 낳았지만 종교와 예술적 영감은 저 무의식의 심연에서 비롯됩니다.

이성을 강조하는 헬레니즘이 600년 이상 지속되자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 인류의 역사에서도 헬레니즘 시대처럼 냉정한 이성이 지배하는 시절이 있는가 하면 중세 유럽처럼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힌 시절이 있나 봅니다.

기원후 3세기 기독교가 급성장하자 로마의 지도층은 긴장을 합니다. 그들에게 기독교는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위험한 사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로마의 지도층은 기독교를 탄압합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박해하면 기독교의 세력이 약해질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습니다.

같은 세계에 살고 있었지만 로마인들과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은 전혀 달랐습니다. 로마인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만을 믿는 철저하게 세속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는 현세적인 안락보다는 사후에 받게 될 심판이 더 중요한 일 이었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기독교인들은 죽음조차 는 기꺼이 받아들였지요.

 

▶ 콘스탄티누스 대제. www.romancoins.info

결국 로마의 지도층은 새롭게 부상한 기독교 세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로마의 지도층은 기독교를 제거하기보다 그들과의 공존을 모색합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 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이미 세력화된 교회의 지지를 얻으려고 합니다. ( 정치가들은 순수하지 못하다니까요.)

그런데 기독교가 공인되자 교회들 사이에서 교리 논쟁이 일어납니다. 기독교가 박해 받는 동안, 교회 내부에서 억압되어왔던 교리 논쟁이 터져 나온 것이지요.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있어서 교리 때문에 교회와 교회가 서로 반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었습니다. 그는 일부 교회의 지지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러한 교회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에큐메니칼 공의회(Ecumenical Council)를 소집합니다. 에큐메니칼은 그리스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사는 온 세상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에큐메니칼 공의회라는 것은 온 세상 사람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뜻합니다.

 

▶ 에큐메니칼 공의회. htmadmin.phpwebhosting.com

그러나 이 회의에 참여했던 것은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 있는 교회들의 대표들이었습니다. 이 최초의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회의가 열린 지역 이름을 따서 니케아 공의회라고 불립니다. 참고 삼아 말하자면 니케아는 지금 터키의 해안도시 이즈니크라고 합니다.

하여튼 이 최초의 공의회는 지금의 국제회의와 비교해보아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교회의 대표들을 초대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시리아, 페르시아, 소아시아, 이탈리아, 멀리 스페인에 있는 교회들의 대표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 정교회의 주교들까지 이 회의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회의에 초청을 받은 교회 대표들은 총 318명이었는데, 그들은 두 명의 장로와 3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왔기 때문에 이 회의에 참가한 사람은 대략 15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대단하죠?

이 대규모의 국제적인 종교 회의의 안건은 예수를 그의 아버지인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로 보느냐 아니면 아버지인 하느님의 밑에 있는 존재로 보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그만한 주제를 토론하기 위해 그 멀리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느냐고 되 물을지 모르지만 사실 이것은 기독교 교리의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인간의 육체 속에 구현된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원리가 역사의 한 순간 한 지역에서 계시된 모습입니다.

 

삼위일체, 루브레프. www. abcgallery. com

따라서 예수가 아버지인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 원리가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완벽하게 재현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됩니다. 이 말은 다시 예수의 가르침이 그가 태어난 때와 장소를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옳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이냐 하는 문제가 됩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는 예수의 신성은 하느님 아버지 아래 위치한다고 주장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진리(하느님)는 예수를 통해 2000년 전 팔레스타인이라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맞게 변용되어 계시됩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 보편적 진리(하느님)을 만나지만, 아리우스파 의 이 논리에 따르면,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도 다 드러나지 않는 보편적 진리 (하느님)를 알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반면 반(反)아리우스파는 예수의 신성이 하느님 아버지와 동일하다는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가 보편적 진리 (하느님)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를 통해 계시된 것 이상의 그 어떤 진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의 그 자체로 완결된 진리이기 때문에 거기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습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으로 보편적 진리를 알려는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계시된 이 완결된 진리를 믿고 따르면 그만입니다. 문자 그대로 예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보편적 진리) 와는 만날 길이 없는 셈이지요.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반아리우스파는 아리우스파를 누르고 아버지인 하느님과 아들인 예수가 동일하다는 ‘니케아 신경’ 를 채택합니다. 그 후 아리우스파는 이단을 몰려 추방됩니다. 그리고 이 때 채택된 교리를 기독교의 도그마로 굳어지게 됩니다.

 

초대 교회의 교리를 완성한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알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 믿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이성에 대한 신앙의 승리를 선언합니다.

 

▶ 나는 알기 위해 믿는다고 했던 아우구스티누스.

www.lichtensteiger.de

이제 진리를 알기 위해서 일단 예수를 믿어야만 합니다. 더불어 이성으로서 진리를 탐색하고자 했던 헬레니즘의 전통은 땅 밑으로 숨습니다. 이제 밝은 의식의 헬레니즘 시대는 저물고 유럽에 중세 암흑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헬레니즘의 전통은 추운 겨울을 만났을 뿐 결코 죽지 않습니다. 헬레니즘의 전통은 르네상스라는 봄이 맞자 땅 밑에서 기지개를 핍니다.

 

그리고 17세기 초 '나는 알기 위해서 믿는다 (Creatio utintellegiam)'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맞서 데카르트는 '나는 인식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외칩니다. 그와 더불어 이성을 통해 진리를 탐색하고자 하는 헬레니즘의 전통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납니다.

◀ 나는 인식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

upload.wikimedia.org

그리고 인식이냐 믿음이냐 하는 초대교회의 문제는 이제 과학이냐 종교냐 하는 문제로 되돌아옵니다.

자 그럼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200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