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포사*Mariposa 내 사랑
김영찬
팜파스**를 지나 베네수엘라 북서쪽 카라카스
외곽 산등성이에
비밀처럼 창백한 산상호수 마리포사가
나를 맞았네
나비처럼 유약한 날개를 가진
담수호, 마리포사
마음 아프면 아픈 맘 거기 푹 적시고
노독에 부르튼 발 첨벙 담가도
상관없다 하네
내 영혼은 망망대해를 건너는
부정기 운항선
낮은 구름이 수시로 내려와 호수의 하복부를
쓰다듬고 가겠지만
오늘밤 나는
카라카스에서 발렌시아 반대 방향 수리남*** 쪽으로
몸을 옮겨
카리브 연안 항구 낮은 지붕 카페에
여장을 풀 것이네
부에나스 따르데스, 부에나스 노체스!****
내 호리호리한 영혼은
밤이면 밤마다 길 잃은 사랑을 위해 떠나지
사랑은 길을 잃고 밤마다
섬 하나로 떠돌지
마리포사, 그 이름은 깨끗한 손수건에 피어나는
향신료
열대화 붉게 피워 육두구***** 진한 열매 맺으라 하네
마리포사는 그런데 수줍은 여인
한 떨기 구름처럼 나비처럼 무명 섬을 가슴에 품고
8부 능선 구릉에 발걸음
멈추게 할 뿐
*마리포사mariposa: 서반아어로 나비, 호접. 모음이 멋진 음소가치(euphonic value)로
여인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하는 어휘.
**팜파스pampas: 방대한 남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대초원
***수리남Surinam: 베네수엘라 서쪽에 위치한 나라. 카라카스에서 수리남 쪽으로 길게
카리브를 따라 흐르는 고혹적인 풍광.
내가 거기에 당도했을 때 파도는 춤추어 나를 반겼지.
****부에나스 따르데스, 부에나스 노체스(서반아어): 영어로 good afternoon, good night.
*****육두구(肉荳蔲,nutmeg): 중남미에 분포하는 열대성 상록관목.
그 붉은 열매는 최고의 향신료가 됨.
*시집 <투투섬에 안 간 이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