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레르의 시

김샨 (김서연 갤러리 가이아 기획전)

바냔나무 2009. 5. 11. 15:06

김샨 (김서연 갤러리 가이아 기획전)




                              The 3rd Solo Exhibition

                Kim Shaan(김서연 갤러리 가이아 기획전)

                                  9 Apr. ― 22 Apr. 2008.

at GALERIE GAIA
서울 종로구 관훈동 145 전화 02-733-3373






색을 통한 루체비스타의 화가 김샨 (김서연)



김샨(김서연)은 젊은 작가다. 그가 구사하는 자유분방한 선과 색채, 구도는 발상부터 젊고 활기차다. 마리 로랑생을 연상케 하는 수채화기법인 그의 oil painting은 로랑생의 인물과 다르고 천경자의 그림과 구별되며 팝아트의 범주에 드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앤디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또 달라서 그만이 갖는 독립된 왕국을 얻었다. 이 젊은 화가의 세계는 색의 세계다. 색채의 제국이 펼치는 감각의 축제, 루미에르(lumiere)의 사제가 주관하는 색의 루체비스타(lucevista)이다. 그는 지중해의 태양과 이집트(그가 이집트 태생 한국인이 된 곳이다)의 원색을 감상자의 머리위에 용서 없이 쏟아 붓는다.
간결한 composition, 극도로 절제된 화폭 안에 그는 투명하리만큼 맑은 빛의 색채를 마음껏 부려 nuance의 왕국을 지배한다. 미대(서울여자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한 후 두 번의 국내 개인전과 두 번의 그룹전(서울, 빠리) 그리고 벨기에, 상하이의 Art Fair에 참가, 등의 활동에 이어 금번 세 번째 개인전(기획전)을 여는 이 젊은 작가에게 주목, 그를 조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단지 젊고 패기 있는 인기작가(그의 그림은 전시가 끝나기도 전에 매진된다)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 그는 재능만을 믿는 화가가 아니라 노력하는 artist이기 때문이다. 여간해서 잘 공개하지 않는 그의 화실은 밤새도록 불이 켜있다.
이번 기회에 그의 화실을 슬쩍 엿보고 그림 뒤에 숨은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어 매우 반갑다.

                            


          김샨(김서연)의 그림  -색채안의 얼굴

                                                    박영택(경기대학교예술대학교수)


김샨은 여자의 얼굴을 그렸다. 그 얼굴은 현실적 인간의 모습인 동시에 그로부터 무척 벗어나있다. 다분히 비현실감이 감도는 얼굴이다. 만화이미지나 그래픽적인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그와 동시에 종교적인 도상의 내음도 풍긴다. 이집트의 조상 혹은 바티칸의 이콘을 떠올려준다. 도식적인 얼굴생김새와 초현실적 색채, 명확한 윤곽선으로 그려진 눈과 눈동자, 간추려낸 윤곽선 그리고 신체가 과감히 생략되고 전적으로 얼굴에만 맺혀진 강조점이 그렇다. 그것은 우울해보이고 적조하며 명상적이기도 하다. 우아미와 슬픈 정조가 한 몸으로 흐르는 성상 聖像이나 생사를 초탈한 표정으로 마감된 부동의 이집트 조상 彫像 등도 오버랩된다. 그런가하면 얼굴과 몸들은 화사하고 밝고 눈부신, 몽롱한 색채의 파동 속에서 부유한다. 떠다니고 흘러가는 듯한 그 인간의 몸들은 더없이 아름답고 아늑하고 더러 감미롭다.

얼굴의 세부적인 부분들은 생략된 편이다. 과장된 큰 눈과 눈동자, 눈동자는 원형으로 선회하듯 색 층으로 그려져 있고 입술은 다물어져 있다.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자리 잡은 얼굴과 간혹 등장하는 손은 적막한 화면에 말을 건네는, 이야기를 자아내는, 작가의 의도와 심리를 추측케 하는 단서 같다. 그것은 마치 불상의 수인手印처럼 일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보인다. 이 얼굴은 작가의 초상이나 타인의 얼굴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상상해서 그려낸 얼굴이지만 결국은 작가 자신의 얼굴과 마음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아 보인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 저당 잡힌 듯한 인물, 인물들은 작가 자신의 추억과 기억 속에 강력하게 자리한 대상, 공간일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추억과 관련되어 있어 보인다.
얼굴만을 그린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 치유적인 심리가 내재해 있다고 상상해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은 틈만 나면 사람의 얼굴을 도화지 가득 그린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인형이나 긴 드레스를 받쳐 입고 길게 땋은 머리를 지닌 공주이미지 혹은 이상적인, 동경의 대상들을 공들여 재현한다. 그 그림에는 자신이 소망하는 대상에의 투사와 어머니에 대한 결핍과 그리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망 등이 촘촘히 스며들어있다. 나로서는 이 작가의 그림에 그런 흔적이 상흔처럼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속 얼굴은 배경으로부터 독립해서 돌출되어 보인다. 확고하게 밀고 올라오는 얼굴은 화면에서 분리되어 떠돈다. 유동적인 붓터치와 몽환적인 색채는 그런 상황성을 증폭시킨다.  
오일을 엷게, 여러 번 발라 올리면서 밝고 투명한 색조를 유지하는데 이 색상은 작가에 의하면 어린 시절 이집트 카이로에서 보낸 추억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나일강 유역의 따스한  기후, 강렬한 태양, 그 아래 번지는 화려한 색상의 아롱짐, 마치 강한 햇볕에 데워진 수영장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몽롱함과 나른함, 그로인해 항상 환하게 밝으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 분위기 등이 이 작가의 기억과 심리 속에 원형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얗게 부서지는 태양 빛에 의해 드러난 세계의 상은 환시적 밝음의 세계였을 것이다. 그 기억과 감촉, 분위기가 부드럽고 밝은 색채로 가시화되고 그 안에서 자신과 어머니가 함께 했던 추억들이 부풀어 오르는 장면이 지금의 그림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젊고 예뻤던 엄마의 장밋빛 볼터지’에 대해 추억한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여자들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여인들로 그려지거나 자신의 추억 속 인물상으로 도상화되고 색채들은 복숭아빛 신선한 혈색과 맑고 투명하며 가벼운 붓터치로 마감된다.    
  
인물은 단독으로 혹은 두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드물게 꽃이나 풍경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얼굴과 몸만이 환각적인 색채를 무대로 자리한다. 인물이 속해있는 공간은 마치 뜨거운 열기에 의해 올라오는 아지랑이, 수면에 반사되어 비치는 햇살, 현실과 꿈 사이를 경계없이 오가는 듯한 장면으로 치환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색채와 색상들의 계조 아래 조율된다. 마치 오르피즘이나 고흐 그림의 소용돌이치는 듯한 터치를 연상시키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하는 매력이 있다. 작가에 의해 상상되어진 색상은 그만큼 또 다른 세상을 연상시키고 그와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과 연결된다.  

사실 인간의 얼굴은 너무 깊고 아득하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비밀, 심난한 내면, 타자에게는 절벽 같은 경험과 사유들로 가득한 모순덩어리가 인간의 얼굴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굴은 결국 인간만의 얼굴이다. 식물과 동물의 얼굴, 벽의 얼굴도 있지만 그것은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얼굴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오로지 우리는 타인의 눈을 통해 그 안을 엿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눈은 얼굴 안에서 핵심적 장소를 제공해준다. 작가가 강조하는 눈은 심리, 명상, 정신적 분위기, 그림을 보는 관자에게 호소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아울러 얼굴은 무척이나 신비로운 신호 발생 장치이다. 얼굴은 놀라운 깊이와 무한한 색조를 띤 메시지를 발산한다. 눈도 마찬가지다. 김샨이 강조해 그린 눈동자의 색깔과 확장된 동공은 기묘한 낯설음을 준다. 프로이트는 “기이한 것은 현실 속에서의 전혀 새롭고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형성된 오래되고 친숙한 것이, 단지 억압과정을 통해 마음으로부터 소외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무의식의 투사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한다. 프로이트가 지적하고 있듯이, 기이함은 감추어진 것을 폭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낯익은 것을 낯선 것으로 섬뜩하게 변형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기이한 것은 오래되고 낯익은 어떤 것이 억압되어 정신으로부터 소외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이함의 효과는 전혀 낯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안전하고 자연적인 것 뒤에 감춰진 모호하고 폐쇄된 영역의 가시화를 통해 나타난다. 이 같은 환상성은 낯익은 것을 다시 낯선 것으로, 안전한 것을 불안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든다.
      

김샨이 그린 얼굴은 영혼에 직접 말을 건네는 이콘에 유사하다. 도상적인 이 얼굴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얼굴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작가노트)



나는 이집트 태생 한국인이다. 유년기를 보낸 나일강 유역의 기억은 특별하다.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태양 볕이 온종일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그 도시의 광휘와 색조는 너무 밝아서 마치 밤새 단잠을 자고 깨어났을 때 꿈속에서 존재했던 화면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그 안에 오묘한 기억으로 내가 남아 있었다는 느낌이다.

내 작품의 모티브는 영원성을 이미지로 담은 소녀. 그 소녀들이란 바로 내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저장된 나와 젊은 시절의 엄마모습이다. 그 무렵엔 장미빛 볼터치를 한 젊은 엄마와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고 내 눈에 비친 형상을 유지한 채 시간만 흐를 것이란 확신이 모티브가 되어 그때의 느낌이 이미지 생성과 연관되어 있다. 인물의 표현기법은 오일을 엷고 얇게 여러 번 덧발라 수채화처럼 밝은 색조를 썼고 홍조 띤 볼은 복숭아 빛 신선한 색이 감돌게 했다. 인물의 피부 또한 맑고 투명하게 가벼운 터치를 주었다.

그림 속 인물이 속해있는 공간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며, 인물의 동작은 세상과의 교감을 의미한다. 인물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강한 햇볕에 노출되거나 풍부하고 청량한 구름과 바람이 내리는 온기 가득한 대지로 때로는 알 수 없는 숲에 갇히기도 한다. 내 유년의 카이로에 대한 인상은 밝으며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인물의 동작과 색감은 강한 햇볕에 데워진 수영장 풀 속에서 출발한다. 부력을 받아 가볍고 부드러워진 몸과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미끄러운 물살은 장난처럼 기분 좋은 느낌이다. 햇살에 데워진 공기가 피부로 파고들 무렵, 물기 젖은 몸은 기꺼이 그 감촉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그때의 기억과 감촉은 부드러운 동작과 색채로 표현하게 만든다.

캔버스 속 그들은 피사체로 찍힌 사진들처럼 동작을 잃고 부동 상태를 취하며 최상의 자세를 취하려한다. 순간에서 영원성을 부여받기를 염원하는 것처럼. 때로는 모순되고 왜곡되며 아름다운 이면에 고요함과 고독을 담았다. 여기서 말하는 고독이라 함은 성장을 겪는 모든 것들이 갖는 것과 같은 당연한 양면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만들어 놓은 인물과 배경은 끊임없이 나를 둘러싸고 내가 만든 허구의 세상은 현실과 꿈속을 혼돈하게 만든다. 인물들이 차지한 공간은 여러 가지 색을 향유하며 그 속에서 변화를 꿈꾸고 있다. 그것은 내가 새로운 색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2008.4월 김샨 (김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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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타니

2008/04/09

 

 

와우~
서연양의 그림이 첫 전시회때 보다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
무엇인가가 눈을 부시게 합니다

가끔 깊은 심연에 들었을떄
저는 오히려 주변이 밝아 지는 느낌도 들때가 있어요
때론 어둡고 적막한 벽이 가로막아 세상과 두절시키기
도 하지만 지나치게 빛나는 그 무엇도 세상과 소통을
저해하기도 하지요
마치 저 우주공간 몇 광년을 앞질러 간
어느 빛의 고독처럼...

 

 

 

바냔
2008/04/09

고맙습니다. 불쑥 오시기엔 멀리 계시는군요. 시집 제목,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는 2년 전, 이 애의 2번째 개인전 작품에 붙여줬던 그림 제목이었답니다.

 

 

 

 

603858
2008/04/09
603858 Good. Very Good.!!!

 

 

이면우
2008/04/10

그림 발군이네요. 좀 슬프기도 하구요. 눈물이 생겨나기 직전의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 같기도 하고, 다 흘리고 난 뒤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잘 팔린다는 의미가 짚어지는 그림들입니다.

 

 

바냔:

이면우 시인 고마워요. 김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