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바흐만과 첼란: 그들은 정말 사랑했을까

바냔나무 2008. 9. 7. 19:11

 

독일문학에서 한 시대의 획을 그은 그들, 바흐만과 첼란. 브레히트가 나무에 관해 말하는 것 자체를 범죄라고 했을 정도로  나찌 이후 독일 땅은 인간적으로 초토화 되어 있었다살생의 역사로 인해 그야말로 독일인의 혈통을 가진 자라면 누구라도 살인자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던인간성 자체가 소멸되어 버린 듯 보였던 시대에 사랑을 이야기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서정시인이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첼란. 아도르노는 첼란을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유일한 시인으로 일컫었다.

첼란은 사실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유대인이었다. 그의 가족 대부분이 수용소에서 학살 당했고, 그 자신도 수용소까지 끌려갔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다. 그후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화가였던 그의 아내와 197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프랑스인 아닌 프랑스인으로 산다.

언어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불어 역시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었는데, 한 번은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왜 불어로 시를 쓰지 않고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간 원수의 언어를 고집하냐고. "독일어는 나의 모국어이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대답은 그의 비극적 운명을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그의 과거는 시 속에서 어둠과 고통과 침묵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그는 희망에 관해, 미래에 관해 말한다. "유리병 속의 편지"가 그 예이다. 물론 이것은 첼란 시의 난해성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그의 시는 유리병 속에 넣어서 바다로 띄워 보내는 편지와 같다는 것이다. 언젠가 이 유리병이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그 속에 든 편지가 읽혀질 수 있듯이 언젠가는 그의 난해한 시 또한 이해되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의 수상 후기들을 읽으면서 아주 진하게 그에게서 희망을 느꼈다. 그의 희망은 고통의 현실을 사는 나에게 희망의 메세지였다. 그가 겪었던 그 절대적 고통도 희망이 될 수 있는데 나의 아픔 쯤이야,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자살을 그도 어쩔 수 없었구나, 하는 식의, 절망의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러고 싶질 않다. 어쩌면 그의 시들이 언어의 가지들을 하나씩 털어내며, 종국에는 침묵에 가장 가까운 형상을 취하게 되었듯이 그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말들을 끝냈을 뿐이었던 거다. 그는 자신의 삶의 허리를 잘라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 필연적인 시점에서 떠난 거다.

그래서 그의 시들은 하나의 완성처럼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편지를 다 썼고, 그 편지를 유리병 속에 넣어 누군가에게 띄워 보냈다. 그 편지를 읽을 수 있는 행운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도, 그 누구의 것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바흐만은 많은 부분에 있어 첼란과 닮아 있다. 그들이 만났을 때 그들 사이에 몇 만 볼트의 전류가 흘렀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남녀간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정신들의 만남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영혼의 교류가 가능한 모든 만남은 어차피 사랑의 형상을 띌 수밖에 없을 테니까.

첼란이 바흐만에게 양귀비꽃을 쏟아놓았다고 그녀가 느낀 것처럼첼란이 바흐만과 서로의 심장을 바꿔 마시고 하나가 되어 시간까지 잠재울 수 있으리라 느꼈던 것처럼사랑이 고귀하고 그 힘이 위대한 것처럼 두 시정의 교류는 영혼과 시심을 나누고 바꾸어가짐으로써 서로의 문학을 더욱 빛나게 했다.

 

첼란이 죽고 몇 해 후 바흐만도 세상을 떠난다. 그녀가 사랑하는 로마의 어떤 호텔방에서. 이불에 담뱃물이 옮겨 붙으면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사고사였다글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양식인 만큼 그녀에게 또한 고통은 농익어 아름다운 문학으로 승화될 때까지 껴안고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소식을 듣고 한 지인이 그녀에게 갔을 때 온몸에 화상을 입은 그녀는 웅크리고 앉아서 그 끔찍한 고통을 말없이 견디고 있었다고 한다

 

 

 

 

"아니, 오늘 어떤 일이 아직 더 있었어요. 초현실주의 시인 파울 첼란. 나는 그를 그젯밤 화가 Jene씨의 집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는 아주 매혹적이에요..... 그가 나를 양귀비꽃으로 채워 놓기라도 하는듯 내 방은 순간 양귀비꽃밭이에요." (바흐만이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9486 25일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그녀의 스무 두번 째 생일을 맞아 그녀의 연인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는다...... 그 중 가장 중요하고도 친밀한 선물은 한 편의 이별의 시였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이 번에는 한 달 전에 그랬던 것처럼 타이핑된 이 시를 부모님께 보내지 않는다. 그것은 보기에도 너무나 확연히 한편의 연시였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소유에 속하는 첼란의 시들은 그의 시 "심장과 뇌로부터"라는 시와 관계가 있으리라는 추척을 하게 한다. 4년 뒤 첼란의 두번 째 시집 "양귀비와 기억"에서 시 "심장과 뇌로부터"라는 싯구는 "밤의 짚들" 편에서  제목이 된다.

 

 

          

그 어떤 것도 보지 않고

이제 너의 눈은 말없이 내 눈 속으로 잠겨든다

옮겨가며

나는 네 심장을 나의 입술로 가져가고

너는 내 심장을 너의 입술로 가져간다, 그렇게

지금 우리가 마시는 그것은

시각(時刻)들의 갈증을 잠재우고

지금은 우리인 그것을

시각들은 시간에게 따라준다

시간은 우리를 마음에 들어할까?

그것을 말하려 어떤 소리도 어떤 빛도

우리 사이로 스며들지 않는다

 

     

 

 

 

…Blicklos

schweigt nun dein Aug in mein Aug sich,

wandernd

heb ich dein Herz an die Lippen,

hebst du mein Herz an die deinen:

was wir jetzt trinken,

stillt den Durst der Stunden;

was wir jetzt sind,

schenken die Stunden der Zeit ein.

Menden wir ihr?

Kein Laut und kein Licht

Schluepft zwischen uns, es zu sagen. …

 

 

 

 

 

 

출처 : 창으로 보는 풍경
글쓴이 : 슐라밋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