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아이스크림 공장 공장장
바냔나무
2009. 12. 31. 16:34
아이스크림 공장 공장장
김영찬
우리회사 아이스크림 공장은 오늘 임시휴업
단행
공장으로 통하는 길을 폭설이 가로막았다
출근 못한 직원들은 집에서 언 손바닥을 호호 불며
부드러운 눈송이
천연 눈꽃축제에 갈 계획을 짜고
아이스크림 공장 공장장 겸
경영관리실 개발팀장 겸
홍보이사 겸, 대표이사 사장인 나는
저 깨끗한 눈꽃나라의 신령스런 전설을 부삽으로
푹 퍼다가
신제품 아이스크림 만들기에 몰두한다
아이스크림 녹는다
세상 녹는다
내가 내 혀끝에서 차갑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녹이지는 않으리
어느 집에서는
아이스크림 크림천정이 녹기 시작하여
집 전체가 없어졌다
나도 아이스크림 속에 들어가 천천히 녹아보려고
여러 번 내 꿈을 실험해 본 적 있다
사원들은 그 때
공장장이 실종됐다고 꼬깔콘 바깥에 서서 웅성거렸다
나는 나를 녹이지 못하리
녹거나 녹아 없어지지 않고 아이스크림이
나대신 녹아
인공 감미료와 유해 색소와 거짓 포장, 황당한 개념 등속을
혓바닥 밑에 삭힐 뿐
아이스크림이 주관하는
관념의 마을로 찾아가 나의 차가운 동체를
얼음꽃 위에 놓아두리
아이스크림의 나라엔 오늘도 눈이 온다
함박눈 내려 쌓이고
나는 창가에 아이스크림 왕국을 꽃 피우기 위해
깊은 밤의 책상에 앉는다
눈이 온다
아이스크림 공장 공장장인 나는 잠을 설친다
*계간 <시안>, 2004. 겨울호